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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넘치는 경제수장을 보고 싶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17호 34면

김영삼ㆍ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힘이 있었다. 경제부총리(또는 재정경제부 장관)가 특히 셌다. 강경식ㆍ이헌재ㆍ진념ㆍ전윤철 등 이름만 들어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이따금 경제부총리 못지않게 센 경제수석도 있었다. YS 때의 이석채(현 KT 회장), DJ 때의 강봉균(현 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적이다. 경제를 잘 몰랐던 YS는 이들에게 전권을 맡겼다. DJ는 경제를 잘 알았지만 이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고현곤 칼럼

사람이 하는 일이니 경제부처 내에서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정책이 정해지면 국민 앞에선 하나로 움직였다. 지방방송은 없었다.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이나 정부 외곽의 인사들이 경제부총리ㆍ경제수석을 제치고 일을 도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과정도 주도면밀했다. 프로답게 강약을 조절했다. 금융실명제는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빅딜(대기업 사업맞교환)처럼 1년을 끌면서 산고를 겪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경우도 있었다.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들으며 우군(友軍)을 만들었다. 여론의 동향도 주시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어도 여론이 등을 돌리면 실패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어려운 정책을 언론에 슬쩍 흘리기도 했다. 여론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YSㆍDJ 정부의 경제팀이 다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2003년 카드대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실수도 적지 않았다. YS 때 원화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유지한 것이나 DJ 때 기준금리를 너무 늦게 올린 것은 뼈아픈 판단 착오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경제팀의 내공이 만만치 않았으니 우리 경제가 그 정도라도 굴러간 건 아닐까.

MB 정부 경제팀은 일사불란, 주도면밀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누가 경제정책의 중심인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장관들 중에 충성 경쟁을 하듯 튀는 사람들이 있다. 순간적으로 돋보일지 모르지만 팀워크를 깨는 일이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나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처럼 외곽의 인사들이 덜컥 경제정책이나 구상을 발표하기도 한다. 곽 위원장은 대통령의 측근 실세다. 정 위원장은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런 중량급 인사들이 외곽에서 별도의 정책을 내놓으면 국민은 혼란스럽다. 이게 대통령의 뜻인지, 실무부처와는 협의가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벽부터 일어나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현대그룹 때부터 근면과 성실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들과 장관들도 적당히 꾀를 부리기 어렵다. 실제로 다들 열심히 일한다. 국민이 그걸 몰라주니 섭섭할 법도 하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고 일이 잘 돌아가는 건 아니다.

야구를 예로 들어보자. 번트를 대야 할 시점에 열심히 한다고 풀스윙을 해선 게임을 망친다. 이기려면 번트도 대고, 의식적으로 밀어치기도 하고, 때로는 기다리는 등 정교한 작전이 필요하다. MB 경제팀은 일이 되게끔 만드는 치밀한 작전이 부족하다. 정확히 말하면 작전을 지휘하는 인물이 없다. 각자도생(各自圖生)에 가깝다.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으니 갈등을 조정하는 데 미숙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청와대는 6일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부분 개각을 단행하면서 ‘일쟁이 내각’이라고 자평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 나무랄 수 없지만, 지금 경제팀에 더 필요한 건 경제수장의 넘치는 카리스마다. 경제부처를 장악하고 야구팀을 이끌 듯 신출귀몰하게 작전을 짜는 경제수장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수장은 당연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후보자)이다. 국토해양부 장관도 아니고, 금융위원장도 아니다. 미래기획위원장은 더더욱 아니다. 굳이 경제부총리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문제될 게 없다. 대통령이 경제정책에 관한 한 그에게 전권을 몰아주면 그만이다. 그에겐 재정부의 차관 이하 인사권은 물론이고, 말을 잘 안 듣는 경제부처 장관의 인사 조치를 건의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

물론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무겁다. 최종적으로는 저축은행 사태도, 구제역도, 물가도 다 그의 책임이다. 박 장관 후보자는 욕 먹는 것이나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그래야 경제부처를 장악할 수 있다. 첨언한다면, 미래기획위원회·동반성장위원회·경쟁력강화위원회와 같은 조직을 계속 꾸려가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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