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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 신화와 다문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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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성완종
충청포럼 회장

최근 미국에서 ‘모던 패밀리’라는 드라마가 인기라고 한다. 이 드라마에는 동양 아이를 입양한 동성애자 부부, 사고 뭉치 세 아이들과 살아가는 철없는 부모, 젊고 아름다운 외국 여성과 재혼한 늙은 재력가 등이 등장한다. 쉽게 섞일 것 같지 않은 구성원들이 한 지붕 밑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정감 있게 그리고 있다. 겉보기에 이질적인 구성원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때로는 삐걱대고 때로는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 다인종·다문화 사회인 미국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단일민족’을 입버릇처럼 내세우던 우리나라도 어느새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서울에만 외국인 타운이 20곳에 달하고, 외국인 인구는 11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3%를 넘어섰다고 한다. 2020년에는 두 배인 250만 명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이제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 구성원과의 접촉은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이들을 포용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 이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 또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 중 상당수가 유·무형의 차별과 불이익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의 경우 매매혼이라는 낙인 하에 경제적인 궁핍과 언어장벽 등으로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라 불린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 내 인종구성 비율은 백인 72%, 흑인 12%, 히스패닉계 6%, 아시아계 5%다. 하지만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고 히스패닉계 대법관과 아시아계 장관이 등장하는 등 경쟁을 바탕으로 한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부강한 미국을 이끄는 경쟁력 중 하나라 할 것이다.

 몇 해 전 하인스 워드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뜨거웠다. 미국의 풋볼 영웅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로 태어나 미국 땅에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채 홀어머니 밑에서 구김살 없이 훌륭하게 자라난 그의 성장과정 때문이다. “내가 워드 데리고 한국에 왔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놈 거지밖에 안 됐겠지”라는 어머니의 자조 섞인 말에서 우리의 현실을 되짚어 보게 된다.

 좋든 싫든 이제 우리 사회는 인종적·민족적·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공동체로 진입시키는 과정에 있다. 이민자들이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약 900억원을 다문화 가정 지원에 쓰기로 했다. 이를 통해 다문화가족센터를 종전 159곳에서 200여 곳으로 늘리고, 방문교육과 보육료를 지원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 뿌리 깊은 폐쇄적인 단일혈통의 민족(ethnicity)이라는 의식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미국의 사회철학자인 아인 랜드(Ayn Rand)는 “겉모습은 달라도 우리 모두 형제다. 그리고 나는 인간성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겉모습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한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는 ‘모던 패밀리’의 일원임을 인간성으로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다.

성완종 충청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