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워터 포 엘리펀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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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러 그루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워터 포 엘리펀트’. 1930년대 미국 대공황시절,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서커스단을 섬세하게 고증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제2의 (리어니도) 디캐프리오’가 될 수 있을까. ‘진공청소기급’ 외모에선 그런 조짐이 보인다. 그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눈부신 피부의 미소년 뱀파이어로 모녀 관객을 빨아들였다. 불과 스물다섯이지만 할리우드 주연급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시절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 ‘워터 포 엘리펀트’에서는 ‘금발이 너무해’의 금발스타 리즈 위더스푼와 호흡을 맞춘다. 아름답지만 불행한 여성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뛰어드는 순정남이 돼 다시금 여성 관객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무대는 서커스단.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수의학 공부를 접은 제이콥(로버트 패틴슨)이 일자리를 구한다. 극심한 불황, 단장 어거스트(크리스토퍼 왈츠)는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월급 줄 돈이 없자 단원들을 열차에서 밀어버리는 잔혹한 남자다. 단장 부인 말레나(리즈 위더스푼)는 코끼리와 곡예연습을 하면서 제이콥과 가까워진다. “내가 17살이었을 때 대체 어딨었어?” 여자의 대사처럼 너무 늦게 만난 이들의 사랑은 어거스트의 심한 질투가 끼어들면서 소용돌이친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불륜을 다뤘으되 격정 로맨스물은 아니다. 베드신·키스신, 혹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밀어(蜜語)에 집중하지 않는다. 강도가 센 대사라고 해 봤자 “당신은 아름답게 살 자격이 있다”는 제이콥의 대사 정도.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 차림의 말레나처럼 영화는 은근한 러브스토리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예측 가능한 러브스토리를 보완해주는 건 대공황시절 서민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이자 섬세하게 고증된 서커스라는 무대. “난 여기선 스타지만 나가면 아무 것도 아냐.” 서커스단의 꽃인 말레나의 대사지만, 서커스가 주는 판타지는 관객에게도 잠시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잊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어 보인다.

 패틴슨은 디캐프리오가 될 수 있을까. 연기력 면에선 아직 흔쾌히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기 힘들다. 특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탔던 어거스트 역 크리스토퍼 왈츠와 비교하면 평가는 더 인색해진다. 하지만 이 배우는 분명 멋진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건 그가 타고난 조건이면서 재능이다. 그걸 어떻게 발전시켜갈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나는 전설이다’의 프랜시스 로렌스 연출. 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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