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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근혜 공항 행사’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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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8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3개국 순방에 올랐다. 그가 출국하는 인천공항에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과 한나라당 의원 30여 명이 배웅 나갔다. 대기실에 앉아 환담하는 박 전 대표 주변에 의원·지지자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이 사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국 정치에서 정당대표나 계파수장, 정권실세가 출입국할 때마다 공항에서 과도한 출영·환송을 벌이는 게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실무적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다. ‘눈도장’을 찍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후진적 관행이다. 의정 활동을 하기에도 바쁜 시간에 실력자에게 눈도장을 찍겠다고 기를 쓰는 모습은 보기에 불편하다.

 이번에 그 사진이 특히 눈에 거슬렸던 이유는 재·보선 직후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선거 참패로 지도부가 사퇴하는 등 위기에 빠졌다. 당의 행태·정책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고 질책을 받은 시점이다. 한나라당으로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왜 참패했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고 신뢰를 잃은 당을 일신하는 데 몰두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박 전 대표의 시야에 들거나 그와 사진을 찍기 위해 떼를 지어 몰려다니니 성난 민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도 이번 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선거 참패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정무수석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환송하는 모습은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물론 당내 계파 간 화합과 소통이 정무수석의 중요 임무 중 하나다. 그럼에도 수십 명의 의원들과 함께 공항 라운지에 앉아 있는 모습은 국민의 눈에 한가롭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대표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구원투수’로 등판하라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그런 카드를 받아들이건 않건 한나라당 대주주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의 한 사람으로서 집권당의 면모를 일신하는 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았다. 인천공항의 풍경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생각이 깊은 국민은 돌아오는 날의 광경도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