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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국제화는 돌 더듬으며 강 건너는 식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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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중국의 ‘통화 공정’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통화 공정이란 위안화를 국제 통화로 만들기 위한 중국의 다양한 시도들을 의미한다. 2009년 7월 무역결제를 시범 도입하면서 본격화한 위안화 국제화는 최근 통화스와프 체결과 위안화 표시채권(딤섬본드)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09년 9월 20억 위안에 불과하던 위안화 결제 규모는 지난해 9월 2000억 위안에 육박하며 100배가량 늘었다. 그 사이 자국 내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는 싱가포르 등 국외의 원군도 얻었다.

 이에 화답하듯 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위안화의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안화 국제화를 향한 중국의 전략과 속내는 무엇일까. 중국 국무원 직속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의 왕궈강(王國剛·왕국강·사진)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2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위안화 국제화와 아시아 금융협력’을 주제로 열린 자본시장연구원 국제 콘퍼런스에 발표자로 참석했다. 하지만 다음 날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와 면담에 참석해야 한다며 이날 오후 서둘러 출국했다.

 -국제 통화제도의 딜레마를 지적했는데.

 “국제 시장에 달러의 유동성을 어떻게 공급하느냐가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 체제가 안고 있는 기본 문제다. 무역거래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이 무역적자를 유지하면 국제 무역 시장에 달러는 공급되지만 달러 가치가 떨어진다. 국제 통화로서 역할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무역흑자를 유지하면 달러 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미국도 진퇴양난이다.”

 -위안화 국제화로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나.

 “위안화가 미국 달러를 대체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국제 통화 체제에 또 하나의 통화를 추가해 각국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갖자는 의미다. 달러 단일화 체제가 아닌 다원화한 복수 통화체제로 국제 통화 체제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는 여전히 공고하다는 뜻인가.

 “현재로선 다른 통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 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달러를 발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 내 경제 여건이기 때문이다. 여건이 나빠지면 국제 통화나 기축 통화로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언제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까.

 “위안화 국제화는 중국 국내 통화가 국제적 핵심 통화로 발전하는 긴 과정이다. 얼마만큼 갈지, 어디까지 갈지, 어떤 상황을 초래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국제화가 완성될지조차 모른다. 독일 마르크와 일본 엔화도 국제화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역 부문의 위안화 거래다. 결제 통화로 사용되도록 추진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확정된 목표를 가지고 출발한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개혁·개방 당시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주창했던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넌다(摸着石頭過河)’라는 말을 인용했다. 위안화 국제화도 중국의 개혁·개방처럼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환율을 통제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위안화의 국제화와 중국의 관리변동환율제가 모순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경제의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발전이다. 경제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위안화 국제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둘 사이의 모순을 조화롭게 해결해 최적의 방법을 찾느냐가 중요하다.”

 -위안화 절상의 속도와 폭은.

 “위안화 가치는 중국의 결정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인 문제다. 그 방향은 아무도 모른다. 위안화 절상은 중국 경제의 실질 경쟁력 향상과도 관련이 있지만 미 달러 가치가 얼마나 떨어지느냐에도 달려 있다. 미국의 2차 양적 완화 정책이 달러 가치 절하에 미친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중국은 미국 국채를 내다팔고 있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중국의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조정할 계획이 있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알 수 없다. 내가 믿기에는 그런 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중국 외환보유액에서 각국 통화 비율을 공개한 적은 없다. 계획에 따라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역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적절한 투자처가 있느냐, 외환보유액이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따라 달러 비중을 조정해 나갈 것 같다.”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위안화를 투자할 수 있는 파생상품 등 다양한 시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개방은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조치는 아니다. 상하이를 국제 금융 허브로 육성하는 계획 등과 맞물려 진행되는 것이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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