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tar&] 황선미 … 어른도 그의 동화를 읽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7면

황선미(48)를 빼놓고 한국 아동문학의 현주소를 논할 수 있을까. 그의 대표작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과 『나쁜 어린이표』(웅진주니어)가 다음 달이면 동시에 100만 부를 돌파한다. 5월 14일 서울 행당동 소월아트홀에서 100만 부 돌파 기념 북콘서트가 열린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올여름 개봉된다.

아동문학에서 이만한 밀리언셀러 작가를 찾긴 쉽지 않다. 고(故) 권정생(1937~2007) 선생의 『강아지똥』이 지난해 말 아동 그림책 처음으로 100만 부를 돌파했다. 동화책으론 역시 권정생의 『몽실언니』가 100만 부를 넘긴 정도다.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MBC ‘느낌표’에 소개되면서 단기간에 100만 부가 팔린 건 특수한 경우였다.

이제 황선미 이름 석 자는 우리 아동출판에서 하나의 보증수표가 됐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그가 될성부른 제자를 찍어 자비를 들여가며 공부를 시켰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청소년 소설 『완득이』의 김려령을 비롯해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의 상당수가 ‘황선미 사단’이라 할 정도다.

황씨는 ‘동화책은 애들이나 읽는 책’이라는 오해와 무지에 시원한 한 방을 날려왔다. 아이들에 읽힐 책을 사주었다가 황선미의 팬이 됐다는 엄마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무엇이 그를 못 말리는 이야기꾼으로 만들었을까.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황선미 작가의 최근작은 자전적 소설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사계절)이다. 작품을 관통하는 건 지독한 가난이다. 주인공 연재네는 외삼촌 때문에 고향집을 잃고 평택의 객사리 마을 친척집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지낸다. 연재는 생선장사에 나선 엄마 대신 동생을 보느라 소풍도 갈 수 없는 처지다. 텃세 부리는 사촌들 앞에서 내세울 건 자존심뿐이다.

눈칫밥 먹어가며 버티던 객살이였건만, 초가지붕 개량사업 때문에 그 집마저 잃고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 신세를 지게 되니 인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연재는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세운다.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이니 100%라 할 수는 없어도 연재가 작가의 분신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실제로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고교에 진학했다.

-연재에겐 가시가 돋쳐 있네요.

“누가 보호해 주지 않고,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누군가 감싸주고 이해해줬다면 가시를 세울 필요도 없었겠죠. 결국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자구책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일부러 하지 않아도 가시가 생기는 선인장 같이 말이죠. 그 책 내면서부터 그렇게 안 살기로 했는데….”

-사진으로만 본 푸근한 인상과 연재의 이미지가 너무나 달라요.

“제가 대학가를 돌아다니면 ‘도를 믿습니까’가 잘 따라붙어요. 복 많게 생겼다, 조상이 돌봐주게 생겼다며 유혹하죠. 두어 번 넘어갔었고, 이제는 ‘감사합니다. 그런가요?’라면서 그냥 가요. 끝내 따라붙으면 ‘이제 그만 하세요’라고 하죠. 첫인상은 좀 그래보이나 봐요. 하지만 뭔가 자를 땐 그렇지 않은 면이 있어요. 왜 이렇게 생기고 내부는 그런지 모르겠네요.” (웃음)

-아동문학에 맞는 작가의 자질이 있을까요?

“제 경우에 비추어 짐작해 보자면 유아기·아동기의 잔상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 아동문학을 하는 것 같아요. 일종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죠. 그런 잔상을 못 떠나보내는 경우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런 식의 말법으로 더 많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황선미란 이름으로 베스트셀러 25종, 스테디셀러 10종이 검색되던데요.

“질기게 살아남았죠. ‘너 베스트셀러 작가라며?’라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소설은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 보지만 아동문학은 아이들에게 국한된 편이죠. 100만 부 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그래도 보편성과 휴머니즘 때문에 대상을 넘어서 시간이 조금 지나서도 살아남은 게 아닌가 싶어요. 동물이건 사물이건 결국 모든 건 삶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거죠.”

-『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메이션 작업엔 얼마나 개입하시는지.

“작업 초반부터 몇 번 가봤어요. 제가 원작자이긴 하지만 그분들이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어떻게 해석되느냐는 건 누가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요. 그렇다고 원작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변해가나를 즐겁게 지켜보는 편이에요.”


-작품 쓰실 때 자녀들의 모습을 참고하셨나요.

“어떤 정황이 눈에 포착될 때 ‘마음이 어땠냐, 하고 싶은 말이 뭐냐’를 물어봤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털어놓는 걸 싫어했어요. ‘일진’이라든가 서열 싸움은 우리 아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자기들도 심하게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네 반에서 정말 센 아이한테 발뒤꿈치로 가슴을 얻어맞고 쓰러졌는데, 그때 죽을 것 같았다고….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정말 몰랐어요. 그 이야기를 대학생이 돼서야 털어놓더라고요.”

-동화 쓰기란 결국 아이들과 대화하는 일인데, 자녀와는 힘든 모양이네요.

“제딴엔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한집에 살아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요. 제가 만만한 어린 시절이 아니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삶이 어떨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은 있죠. 행복하기만 했던 사람은 잘 모르는 게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먹고살 걱정은 없고, 학원과 과외가 가장 큰 고민일 거라는 편견이 있죠.

“어느 공간, 어느 시대나 어린 시절은 힘든 것 같아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없잖아요. 요즘 한둘밖에 안 키워 온갖 정성을 다 하는데 집단 속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서열이 생기잖아요. 형제가 많으면 나누고 양보하는 걸 체득하는데, 그러지 않으면서 컸기 때문에 집단 속에서 자기를 어필하기 위해 이상한 방법까지 써야 하죠. 자기 문제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방법으로 남을 해하거나 자해를 하기도 하죠. 물질적 풍요가 내면적 문제까지 해결하는 건 아니니까요.”

-글 쓰는 습관은요.

“필요할 때 아무 때나 써요. 밤엔 안 써요. 자야죠. 글 쓰는 것도 생활의 일부니까요. 다만 메모를 많이 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작업할 땐 대체로 시놉시스(개요)를 가지고 하는 편이라 감성에 맡겨두고 가는 대로 쓰진 않아요. 앞부분은 어떤 땐 몇백 번 보는 편이에요. 가능하면 오자 없이 넘기려고 하는 편이죠. 편집자들이 저 스스로에게 가혹하대요.”

-다른 작가 작품은 많이 보시는지.

“저 책 싫어해요. 동화책도 잘 안 읽어요. 가옥이나 술, 요리에 관한 책을 읽죠. TV도 안 보고요. 시장을 많이 보고 많이 걸어요. 영화는 혼자 잘 봐요. 여행도 그렇고요. 진짜 즐기고 싶은 건 혼자 하죠. 안 그러면 몰입을 못 하니까요.”

-주변에서 동화작가인 걸 아나요.

“우리 동네 사람들도 잘 몰라요. 만날 노느니 마트에 같이 취직하자는 사람도 있어요. 말하면 불편해져요. 숨어 있는 관찰자로서 지켜보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시콜콜] 아들 얘기서 착안한 『나쁜 어린이표』
“내 글 읽은 아이 선생님 별점 스티커 없앴는데, 정작 책은 못 드렸네요”

선생님은 자신이 정한 규칙을 어기는 아이에게 ‘나쁜 어린이표’ 스티커를 붙인다. 스티커가 3장이 모이면 5시까지 남아 수학 문제를 풀거나 독서 감상문을 쓰는 벌을 받게 된다.

자신의 뜻과는 달리 자꾸 ‘나쁜 어린이표’를 받아 스트레스를 받은 건우는 선생님 몰래 스티커를 화장실에 버린다. 그러곤 선생님이 나쁜 일을 할 때마다 ‘나쁜 선생님표’를 그려 나간다. 선생님 마음대로 규칙을 바꿨으니 1표, 고자질한 애한테는 나쁜 어린이표를 주지 않았으니 또 1표….

황선미의 대표작 『나쁜 어린이표』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을 전복하는 건우에게서 어린이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을 편하게 통제하기 위해 그런 시스템을 적용하는 반이 아직도 많아요. 개성 많은 아이들을 혼자 이끌어가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러나 줄 세우기 때문에 희생당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또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선생님이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실제로 아들 반에서 벌이진 일을 소재로 쓴 작품이다. 그러나 아들이 건우처럼 ‘나쁜 선생님표’를 붙인 건 아니었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까지만 했으면 뭐가 걱정이었겠어요. 그랬으면 좋겠다, 주체적인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이었죠. 그 나이에 그렇게까지 선명하게 자기 생각을 보여주기 어렵죠. 어른도 어려운 걸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선생님이 이제 스티커 안 줘”라고 말하더란다. 어린이신문에 4회째 연재했을 때 스티커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재가 끝나고 발간된 책을 담임선생님에게 전하지 못했다. 혹여 아이한테 부당한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을 떨치지 못해서다. 동화의 힘은 셌지만, 엄마는 약했다.

이경희 기자

황선미

1963년 충청남도 홍성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작품으로

『내 푸른 자전거』『나쁜 어린이 표』 『마당을 나온 암탉』

『초대받은 아이들』 『들키고 싶은 비밀』

『빈 집에 온 손님』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

『막다른 골목집 친구』『과수원을 점령하라』

『넌 누구야?』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등이 있다.

탐라문학상·세종아동문학상 등 수상.

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