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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함에 대한 '합리적 보수'의 레드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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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는 강했다. 오만함에 과감하게 ‘레드 카드’를 던졌다. 경고가 아니라 퇴출이라는 의미다. 지난 10년의 잘못을 재단만 했지 대안이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물음표를 청와대에 던진 것이기도 하다.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사퇴하면서 치러진 선거이기 때문이다. 임태희 실장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거취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 실장은 강재섭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안 대표도 따랐다. 낙선했다. 여권 개편이 뒤따를 전망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분당을에서 지면 한나라당은 끝”이라며 표심에 매달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유시민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보궐선거에서 야권단일화를 이뤄낸 장본인이다. 그래서 민주당을 제쳐놓고 유시민이 주목을 받았다. 손학규 민주당대표를 향해 "분당을에서도 야권 통합선거운동을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 생명줄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에서 패했다. 사실상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는 손학규다. 그는 유시민의 제안을 내쳤고, 현 정부 최대 실세에다 연임을 거듭했던 곳에 출마해 당선됐다.

또다른 승자는 분당을 지역구민이다. 그들은 합리적 보수의 대변자다. 합리적 보수는 야당 대표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구세대 정치인으로 대결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분당을에서 지면 한나라당은 끝”(홍준표 최고위원)이라며 절박하게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의 손을 잡지 않았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임태희 후보(현 대통령실장)의 득표율은 71.1%였지만 YTN의 출구조사에서 강 후보는 이보다 3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고, 민주당 손학규 후보는 과반이 넘는 지지율(55.4%)로 조사됐다.

 이른바 ‘분당 우파’가 한나라당에 강력한 경고장을 던진 이유는 아파트 가격 하락과 전·월세 대란, 물가와 유가 폭등 등이 계속된 탓이란 분석이 일차로 나온다.

 장훈(정치학) 중앙대 교수는 “수도권 30, 40대는 부동표의 성향이 많은데 물가와 주택시장 문제 등 경제적 형편이 굉장히 나빠진 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이지만 여러 리더 중에 한 명인 손 대표에게 주목하고 지지를 보낸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인 조정식 의원은 “분당처럼 고학력 유권자들이 집중된 선거구에선 후보의 ‘스펙’과 ‘지위’를 주의 깊게 따지는 만큼 현직 야당 대표를 떨어뜨리는 게 분당구민들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결국 ‘인물론’이 먹혔다”고 말했다.

친박 계인 이한구 의원은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정부가 하겠다고 약속한 일은 안 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은 강행했다”며 “한나라당은 그런 청와대의 일방통행을 쫓아다니기만 하다가 잘못을 고치지 못했다”고 봤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분당 우파의 ‘전략적인 투표’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이 변해야 하고, 한나라당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한 것 같다”며 “(분당 우파가) 한나라당의 미래를 위해 분당을에서 승리해선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저인망식 연고 찾기도 힘을 발휘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분당을 유권자 16만6000여 명의 40%가 투표에 임하면 6만6000여 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며 “우리는 이 숫자의 절반인 3만3000명에 육박하는 연고자를 찾았다”고 귀띔했다.

김진희·김승현·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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