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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3색 신호등’ 사진만 찍고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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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선태 법제처장

경찰이 시범 운영 중인 ‘화살표 3색 신호등’ 도입 결정에 앞서 실시했던 해외 시찰이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찰단은 2009년 3월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 선진국 5개 도시의 신호등 체계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11박12일의 일정 동안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시에 한나절 남짓 밖에 머무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찰단은 정선태 당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법·제도단장(현 법제처장)과 배호열 서기관, 경찰청 교통운영과의 황창선 계장과 구자훈 경위, 김원호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김동효 도로교통공단 교통공학연구실장, 김진태 연세대 도시공학연구소 연구교수 등 7명으로 이뤄졌다. 이들 중 한 명은 24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 도시에 도착한 다음날 하루 둘러보고, 이튿날 아침 바로 다음 도시로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아도 파리에서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는 의견이 있어 런던과 베를린은 팀을 둘로 나눠서 갔다”고 했다. 신호등 체계가 잘 돼 있다는 인상을 받은 도로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정확한 도로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가본 곳들이라 지금 이름을 들어도 모를 것 같다”고 대답했다.

 시찰단은 귀국 직후 ‘VIP 보고용’이란 보고서를 만들어 국경위는 물론 청와대에도 제출했다. 하지만 본지가 이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국내에서 이미 연구가 이뤄진 내용이었다. 해외 시찰에서 얻은 결과라곤 사진과 동영상 자료에 그쳤다. 사진 등도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라고만 돼 있을 뿐 어느 도로인지 나와 있지 않았다. 그 도로들이 해당 도시의 대표적인 도로인지도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찰단 단장이었던 정선태 법제처장은 “당시 시찰은 신호등 체계만이 아니라 교통운영 체계 전반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며 “뉴욕시 관계자 등을 만났지만 정확히 누굴 만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등에서 연구해 놓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사진과 동영상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강만수 당시 국경위 위원장이 현 정부 출범 직전 재직했던 곳이다.  

박성우·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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