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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강철중’ 박미옥 … 신창원도 그녀를 피해가지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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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만삭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을 수사한 서울 마포경찰서 강력계 박미옥 계장(오른쪽)이 송은주 경사와 함께 마포서 앞에서 웃음을 짓고 있다. [강정현 기자]


내 가족보다 남의 가족 눈물을 더 자주 본다. 억울하게 죽은 이의 한을 풀어주려다 범인 검거에 한이 맺혔다. 서울 마포경찰서 강력계의 여성 투 캅스(Two Cops) 박미옥(43·경감) 강력계장과 송은주(44) 경사의 이야기다.

 미혼인 박 계장은 ‘강력계 여형사의 전설’이다. 고교 졸업 후 순경이 된 그는 1991년 형사계에 발을 들인 후 경위까지 특진을 거듭했다. 서울경찰청 여자형사기동대 창단 멤버, 2000년 최초 ‘여성 강력반장’…. ‘최초’라는 말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현재는 마포서 6개 강력팀과 마약수사팀을 지휘한다. 98년 아들 둘을 둔 ‘아줌마 경찰’로 입문한 송 경사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를 거쳐 2009년부터 마포서 조폭전담팀에서 일하고 있다. 각각 유도, 검도 유단자인 박 계장과 송 경사는 권투와 마라톤 등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흉기를 휘두르는 범인을 삼단봉만으로 제압할 체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이들이 강력계 형사로 뛰는 이유는 뭘까. “나를 키운 건 8할이 사건”이라고 했다.

 “새로운 사건을 만날 때마다 전혀 몰랐던 세계를 접합니다. 직업군, 유통구조, 범죄 테크닉…모든 게 새롭죠. 사건이 터지면 몇 달씩 집에 못 들어가고, 용의자 조사하느라 1주일씩 밤을 새우지만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버팁니다.”(박 계장)

 신창원·유영철·정남규가 이들을 키운 사건의 이름이다. 98년 박 계장은 교도소에서 탈옥한 신창원을 쫓아 8개월간 전국을 누볐다. 신창원의 일기장을 외우다시피 했고 동거녀 8명을 심층 인터뷰해 생활 습관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신창원은 체포된 뒤 박 계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송 경사는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에서 강력계의 매력에 빠졌다. 비가 내리는 저녁, 유영철이 시신을 묻었다고 지목한 야산에서 땅을 파다가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시신이었죠. 무섭지 않았어요. 현장에 있다는 생각에, 사건을 해결하게 됐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더군요.”

 이때부터 잠복 근무를 할 때는 10시간 이상 화장실에 가지 않고, 언제라도 출동하기 위해 운동화만 신는 생활이 계속됐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서울 서남부 살인’으로 불린 정남규 사건 때다.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여경들로 꾸린 수사팀에서 동료로 일했다. 그 인연이 만삭 의사 부인 사망 사건 수사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지난 1월 사건 발생 직후 박 계장은 의사인 남편과 두뇌 싸움을 벌였고, 송 경사는 피해자 주변을 샅샅이 뒤져 퍼즐을 맞춰나갔다. 벚꽃 한번 못 보고 봄이 지나갔다. 지난 일요일, 밤샘 잠복을 하고 경찰서로 복귀하던 송 경사의 눈에 벚꽃 구경을 나온 인파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형사다. 범인 잡는 형사다.”

글=심서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두 여성 형사가 수사한 사건은

1996년 양재동 남녀 납치사건(박미옥, 경사 특진)
1998년 신창원 탈주 사건(박미옥)
2004년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송은주)
2004년 정남규 서남부 살인 사건(박미옥·송은주)
2009년 조직폭력배 호텔 갈취 사건(송은주, 경사 특진)
2011년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박미옥·송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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