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런 식이라면 저축은행 청문회는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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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 전·현직 경제수장이 8명이나 증인으로 출석한 청문회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지난 21일까지 이틀간 국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부실 청문회는 18대 국회에서 처음 열린 ‘정책 청문회’였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자명했다. 나라 경제를 멍들게 한 저축은행 부실의 원인을 밝히고 향후 대책을 논의해야 할 자리였다. 하지만 청문회에 출석한 전·현직 경제수장들은 한결같이 “나는 책임이 없다”며 면피하기에 바빴다. 국회의원들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당파적 이익에만 얽매여 ‘정치 청문회’로 전락시켰다. 국민들의 ‘알 권리’와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실종됐다.

 청문회에서 규명돼야 할 건 참 많았다. 저축은행 부실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정부 정책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는지 등을 따져야 했다. 그런 후 파장은 어디까지 미칠지, 이를 해결하고 재발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함께 논의해야 했다. 그게 ‘정책 청문회’의 소명(召命) 아니던가. 게다가 저축은행 부실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2월 8곳이 영업정지를 받은 후 사태가 잠잠해진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은 진행 중이고 앞으로 어떤 저축은행이 구조조정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충격은 다른 곳에까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저축은행이 구조조정되면서 건설사들도 줄줄이 같이 넘어가고 있다.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던 시중은행들도 10조원으로 추정되는 배드뱅크를 설립해야 할 판이다. 이 모든 게 과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이로 인한 손실 때문이지만, 그 규모와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예컨대 저축은행의 PF 대출은 12조원, 이 중에서 부실이 우려되는 대출은 1조원 남짓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청문회에서 1조원 정도만 투입하면 저축은행의 PF 부실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인지를 충분히 논의했어야 했다. 1년여 전 정부는 부실이 우려되는 PF 대출은 4조원 정도라고 했지만 그동안 부실 처리에 쓴 돈만 5조원을 넘었다.

 그간 말 많았던 공동계정 문제도 미진한 채 끝났다. 은행 등 다른 금융권에서 낸 예금보험료를 저축은행이 써도 되는지, 10조원이면 저축은행을 말끔히 구조조정할 수 있는지, 공적자금은 별도로 투입되지 않아도 되는지도 규명되지 않았다. PF 대출의 구조와 관행도 충분히 따진 후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건설사들이 자기 돈 한 푼도 없이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사업하는 구조와 금융사들이 사업성 분석을 거의 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관행이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물론 청문회에서 모든 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진 않는다. 청문회가 책임자 성토의 장이 돼서도 안 된다. 그렇더라도 왜 이렇게 됐는지의 원인은 충분히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만 더 이상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의 궁극적인 역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알맹이 없는 부실 청문회란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의 불신만 사는 청문회는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정치권과 정책당국에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