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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고향처럼...지친 우리 어깨를 토닥이는 따뜻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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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호 10면

유난히 어수선한 봄이어서 꽃이 예년보다 늦기는 하지만 그래도 봄은 이제 중턱을 올라가고 있다. 다음 주면 5월이고 꽃들은 지금보다 더 만발할 것이다. 5월 꽃의 여왕은 단연 장미다. 너무도 화려한 이 꽃은, 꽃과 식물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도 그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며, 모든 대중가요의 꽃들을 평정해 버렸다. 식민지 시대 대중가요만 해도 장미는 그리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나치게 화려하며 가시마저 가지고 있는 장미를 다소 불건강한 아름다움으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6> 질박한 찔레꽃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서양적 도시의 미감이 대중들에게 크게 호소력을 발휘하면서 장미는 대적할 수 없이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70년대 도시 서민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집은 ‘장미꽃 넝쿨 우거진’ 비둘기집 같은 집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생일 축하나 사랑 고백에 빠질 수 없는 소품이 됐다. 백 송이 장미를 바치는 청혼이 현실이 되고 나니, 이보다 더 판타스틱해야 하는 대중가요에서는 ‘백만 송이 장미’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장미에 밀려, 예전부터 우리를 위로해주었던 소박한 꽃들은 현대 도시인들의 눈길을 받지 못했다. 장미의 조상쯤 되는 찔레꽃도 그런 경우다. 찔레와 장미는 같은 종류의 식물이다. 강인한 야생성을 지닌 찔레 뿌리에 장미를 접붙여 키우는 경우가 많다. 공주 대접을 받는 장미에 비해 찔레는 야산에 귀찮은 가시덩굴을 만드는 천덕꾸러기다. 하지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소박하고 작은 홑꽃잎일지언정 꽃의 형태와 이파리 모양, 게다가 향기까지 장미의 원조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무리 천덕꾸러기 찔레 덩굴일지언정 장미의 계절 5월에는 덩굴마다 조롱조롱 하얀 꽃을 피우고 그 기막힌 향기를 뿜어낸다. 시골에서 찔레 덩굴에 다리 긁히며 뛰어놀았던 사람들은 화려한 봄날 그 향기를 잊지 못하고, 고향의 추억에 찔레꽃을 곁들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백난아의 ‘찔레꽃’, 1942, 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찔레꽃은 일반적으로 하얀 꽃이 많지만 꽃분홍의 다소 큰 꽃을 피우는 종류도 있다. 백난아의 ‘찔레꽃’에서 하필 ‘붉게 피는’ 찔레꽃을 선택한 것은 다분히 가사의 편안한 발음을 위한 배려라고 보이지만, 아주 현실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제 말 태평레코드사의 마지막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오히려 해방 이후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아마 ‘남쪽 나라 내 고향’이란 의미가 서울로 올라와 살던 수많은 삼남 지방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일제 말의 맥락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었다.

이 노래는 60년대 이후 여러 번 개작됐다. 일단 분단으로 인해 ‘동무’란 말이 꺼려진 탓에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나니 이 노래는 고향의 친구가 아닌, 고향의 애인을 그리는 노래로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2, 3절 개작의 범위는 그것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작사자가 월북을 한 것도 아닌데 이런 개작이 이루어진 경우는 흔치 않다. 왜일까? 그 이유는 바로 3절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부르지 않는 3절 가사는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로 시작한다. 즉 이 노래는 북간도 등 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남쪽 한반도의 고향을 그리는 노래였던 것이다. 바로 중국 침략이 이루어진 일제 말기에 만주·중국을 소재로 한 수많은 ‘시의적절한’ 노래 중의 하나인 셈이다. 해방 후 분단으로 북간도는 갈 수 없는 땅이 되었으니 3절 가사를 뭔가 자꾸 다른 걸로 바꾸고 싶어졌겠지.
그런가 하면 70년대 청소년기를 보냈던 세대에게 노래 속 찔레꽃은 이연실(사진)의 목소리로 기억된다.

“1.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 2.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 밤마다 보는 꿈을 하얀 엄마 꿈 /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이연실의 ‘찔레꽃’, 1972, 이연실 작사, 박태준 작곡)

‘가을 밤 깊은 밤 벌레 우는 밤’으로 시작하는 이태선 작사의 ‘가을 밤’의 곡을 그대로 쓰고 식민지시대 이원수의 동시 ‘찔레꽃’을 원용해 만든 새로운 가사를 붙였다. 이원수의 시에서, 일 나간 식구를 기다리며(이원수의 시에서는 광산에 일 나간 언니를 기다린다) 배고파서 혼자 몰래 찔레꽃 따 먹는 아이의 이야기를 가져오기는 했으나 오히려 원작시에 비해 형상화가 더 뛰어나다. 이태선 가사(‘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의 영향이었을 듯한데, 원작시의 ‘언니’를 ‘엄마’로 바꾸어 1절부터 눈물샘을 건드린다.

하지만 정작 절창은 2절이다. 일이 끝난 캄캄해진 밤에, 굶고 잠든 아이에게 밥 한 술이라도 먹이려 ‘하얀 발목 바쁘게’ 뛰어오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꿈속에서나 보는 배고픈 아이의 절묘한 대조는 탁월하다. 이후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이은미는 물론 신영옥까지 모두 울먹이고, 급기야 영화 ‘하모니’에까지 등장해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이러니 우리에게 찔레꽃은 소박한 시골 꽃이어서 더더욱 슬픈 꽃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장사익이 임동창의 ‘오버액션 제멋대로 피아노’에 맞춰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장사익의 ‘찔레꽃’, 1995)라고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5월 중순 넘어 산길을 걷다가 해가 잘 든 곳에 노란 꽃술을 품은 흰 꽃이 기다란 덩굴에 다닥다닥 붙은 것을 보거든 걸음을 멈추시라. 그리고 큰 숨을 들이켜 향기를 맡아보시라. 화려한 장미에 밀려 핀 그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은 한국의 산길에서만 느낄 수 있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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