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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러셀이 말하길 ‘윤리는 전쟁무기에 의존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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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런던통신 1931-1935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557쪽, 1만4800원

80년 전에 발표된 글이라지만 오늘 아침에 썼다 해도 믿을 만한 혜안이 번득인다. 98세 장수를 누린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강철같이 강인하면서도 고무줄처럼 유연한 지혜로 인류 ‘모든 시간과 모든 존재의 구경꾼’이란 별명에 걸맞은 에세이를 남겼다. 미국의 언론 재벌인 허스트 소유의 신문에 5년에 걸쳐 매주 한 편씩 실은 이 칼럼은 ‘누가 철 지난 신문의 운명을 말하는가’라고 반박하고 싶을 만큼 종이 신문의 위력을 증언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애국심을 과시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주목해 마지않을 발전이다”(444쪽, ‘이런 걸 믿다니’), “결국 모든 윤리 체계는 전쟁 무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221쪽, ‘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같은 대목을 읽으면 적대적인 독자를 위트로 사로잡는 러셀의 장난기 서린 눈망울이 떠오른다.

러셀이 이 글을 내놓은 때는 스스로 “세계가 비틀거리면서 최후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재앙이 임박했다”고 본 시기였다. 두 번째 세계 대전이 다가오는 상황이었으니 때로 징그러울 정도의 신랄함이 극약 처방으로 필요했음직하다. 철학자·수학자·반핵평화운동가였던 그가 이토록 도발적이면서 논리 정연한 글 솜씨까지 갖춰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천재는 하늘이 내는가 싶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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