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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제인 에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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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소설가 샬롯 브론테 탄생 195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영화‘제인 에어’서 열연한 미아 와시코브스카.

소설 『제인 에어』는 지금까지 20번이 넘게 영화화된 ‘스크린셀러(Screenseller·영화화된 소설이라는 뜻의 조어)’의 대명사다. 올해는 원작자 샬롯 브론테 탄생 195주년.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리메이크가 거듭되는 걸 보면 원작의 세기를 가늠할 만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로 등장한 할리우드의 신성 미아 와시코브스카(22)가 조안 폰테인·샬롯 갱스부르 등 쟁쟁한 선배들의 뒤를 이었다. 가냘픈 몸에 뜨거운 화로 같은 속내를 품은 여주인공 제인 에어를 연기한다.

 아직까지 원작을 읽지 못한 이들에게 ‘제인 에어’는 원작을 읽지 못해도 무방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탈진한 채 황야를 헤매다 낯선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첫 장면부터, 눈 먼 로체스터(마이클 파스밴더)와 돌아온 제인이 감격의 해후를 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수준급이다.

 30대 소장파 여성 감독 캐리 후쿠나가는 캐릭터 재해석보다 원작을 맵시 있게 요약하고 독특한 향취를 제대로 살려보겠다는 야심에 집중한 듯하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으로선 드문 당찬 모습을 보여주는 제인, 여느 여성과 다른 제인만의 강인함을 높이 평가한 뜨거운 남자 로체스터의 운명적인 사랑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영국의 전원 안에 풍경화처럼 담겼다.

 배우들도 감독의 의도를 꽤 충실하게 따랐다. 어린 시절 발레로 다져진 우아한 몸매의 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예쁘진 않지만 매력 있는’ 원작의 제인 에어 이미지와 많이 닮았다. 12살 연상인 독일 출신 파스밴더와의 조화도 나쁘지 않다. 시대극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우아하고 절제된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런 만듦새는 뒤집으면 ‘제인 에어’에 불만을 갖게 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 원작소설은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빅토리아 시대에 쓰여졌지만, 이른바 ‘격정멜로’다. 로체스터와 제인의 결혼 에피소드로 대표되는 격정적 요소가 원작소설을 ‘정중동(靜中動)의 걸작’으로 만들었다. 영화에서 로체스터와 제인이 이별하게 되는 사연이 그만큼의 강도로 담겼는지는 의문이다. 21세기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19세기 제인 에어의 사연은 그래서 다소 심심하기도 하다.

 ‘제인 에어’는 리메이크가 원작의 재현이냐 재구성이냐 하는 오랜 논란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손필드 저택의 가정부 페어팩스 부인 역의 주디 덴치는 그런 점에서 2011년 버전 ‘제인 에어’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표정 변화 하나로도 번번이 웃음을 자아내는 그를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2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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