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튀김의 추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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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호 35면

“영업하는 사람이 못 먹는 게 어디 있어? 고객이 드시면 같이 먹어야지.” “월급쟁이가 못 먹는 게 어디 있어? 상사가 먹자면 다 먹어야지.”

필자가 입이 짧은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가끔 쓰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하나가 된 세계에 살고 있다.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수많은 외국인들과 외국 문화와 접하며 살고 있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다문화가정을 보더라도 이제 우리만의 것을 고집하며 살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평가해 보면 우리 국민은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도가 그리 큰 것 같지는 않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란 언어,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을 망라하는 것인데 우리 것과 다르다고 그릇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서로 다름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선입견만 버린다면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기가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음식이야말로 각 나라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고 다른 나라의 문화 중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손쉽게 접하는 것이다. 영국 생활을 할 때 느낀 바로는 영국인들이 다른 유럽인들보다 타 문화에 대해 훨씬 개방적이고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한 예로 한국 음식이 처음인 사람을 한국 식당에 데려 가서 음식을 권하면 영국인들은 일단 주저 없이 이것저것 먹어 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하지만 다른 유럽인들은 음식의 모양이나 색깔을 보고 먹어 보기도 전에 주저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물론 개인 간의 편차일 수도 있겠으나 역시 세계를 지배해본 경험이 있는 민족은 다른 문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필자의 짧은 경험에 의하면 인도인들은 자기네 음식이나 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한지 그들과 식사를 할 때 식당 선택권을 주면 거의 대부분 인도 식당을 택했다. 한번은 미국에 있는 인도인 고객을 방문하여 미팅을 하고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팅 후 고객이 이끌고 간 곳은 사무실 근처의 조그만 인도 식당이었다. 고객이 시켜 준 음식은 향이 아주 강하지는 않아 먹을 만 했으나 우리 비위에는 잘 맞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연방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손까지 써 가며 열심히 먹었다. 인도인 고객은 그걸 흐뭇하게 지켜보더니 한 그릇 더 시켜 주는 게 아닌가. 그걸 다 먹느라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진땀을 흘린 기억이 난다.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비즈니스를 하자고 찾아 온 외국인을 허름한 식당에 데려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시켜 줬을 때 안 먹고 인상 쓰고 있는 사람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맛있게 먹는 사람 중에 조건이 비슷하다면 누구와 거래를 할 것인가. 결국 인간이란 다 똑같은 것 아니겠는가.

필자는 자랑스럽게도 바퀴벌레 튀긴 걸 먹어 본 경험도 있다. 오래전 중국 상하이에서 고객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예정과는 달리 낡고 허름한 식당에서 나오는 대로 식사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때 첫 번째 나온 음식이 한 대접 수북한 벌레 튀김이었다. 필자도 놀랐지만 같이 있던 서양인들을 포함한 고객들의 놀란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호스트인 내가 그 음식을 회피한다면 그날 식사 자체가 망가질 위험이 있어 호기롭게 먹고 위기를 넘긴 기억이 있다.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게 바퀴벌레란다. 그런데 식용으로 키우는 것이니 괜찮단다. “아니, 생선회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을 우선으로 치는데 기껏 양식을 먹다니, 다음에는 자연산에 도전을 해 볼까!” 하지만 맛 자체만 놓고 본다면 생김새와는 달리 기름에 튀겨서 그런지 제법 고소한 맛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퀴벌레인 줄 몰랐으니 먹을 수 있었을 테고 또 맛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몸에 해로운 것이 아니라면 결국 다 선입견과 관습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마다 이런 예를 들며 마음을 열고 우리와 다른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조언을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마음을 열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아마 서로 훨씬 수월하게 가까워질 것이라고. 젊은이들이야말로 세계를 무대로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켜야 할 주역들이니까. 그래서 나는 바퀴벌레를 먹어 본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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