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최후의 승리는 패배의 순간 결정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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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사후인지편견(hindsight bias)’이란 게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뒤, 마치 사전에 그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믿는 현상을 말하지요. 처음에 무슨 일을 벌일 때는 아무 말 않고 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게 대표적인 경웁니다. 그럴 줄 알았다지만 말이 없었던 걸 보면, 확신을 갖고 있진 못했겠지요. 그저 막연하게 ‘잘못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잘못된 결과가 나오면 ‘거봐, 내가 뭐랬어’ 자신이 옳았다 믿는 거지요.

 이번 KAIST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딱 그렇습니다. 온갖 과거 시제의 예언들이 막걸리 먹고 트림하듯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누구나 했던 겁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지적을 했어야지요. 잘못을 알았다면 못하게 말렸어야죠. 진정한 예언자들은 일이 터진 후 말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이미 했거든요.

 ‘내가 뭐랬어’ 예언자들의 뒷공론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자칫 엉터리 처방전이 따르거든요. 몇 점에 등록금 얼마씩이란 발상도 참 딱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의 개혁이 좌초해서야 되겠습니까. 책임 공방보다 합리적인 대안 모색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예언자가 아니었으니 대안에 끼어들진 않겠습니다. 대신 그 대안이 또 다른 대안을 필요로 할 때 다시 한번 강요될 희생을 피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어떠한 대안보다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갑옷이 될 수 있으니까요.

 역사책을 넘기다 보면 승승장구하다가-어쩌면 승승장구할수록-단 한 번의 패배나 한순간의 실수로 쓰러져 끝내 일어서지 못하는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투에서 패하고 분노 속에서 사라져간 영웅들, 동시대인들에게 외면받고 좌절한 수많은 천재들이 그랬습니다. 한번 꿇은 무릎은 다시 펼 수 있지만, 한번 구겨진 그들의 자존심은 무엇으로도 펼 수 없었던 거지요. 너무 빨리 세상을 등진 KAIST의 영재들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선택을 일반화할 순 없어도, 어느 한순간 그들 앞을 막아선 장벽을 두어 걸음 물러나 다시 바라볼 여유만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앞으로 맞닥뜨릴 더 큰 장벽도 두렵지 않았을 테고요.

 패배나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누구 말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일 뿐”이란 말도 있잖습니까. 한번도 져보지 않은 사람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 이유는 처칠이 말해줍니다.

 처칠이 누굽니까. 연합군의 선봉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사람 아닙니까.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영국 국민들은 처칠을 총리 자리에서 해고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처칠은 말합니다. “적들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할 때 나는 유권자들로부터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실 그것은 처칠의 네 번째 실패에 불과했습니다. 첫 번째 것은 더욱 비참했지요. 1차대전 때 해군장관으로 영연방 함대를 이끌고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지휘하다, 40만 병력 중 25만을 잃고 철수하는 참패를 당한 겁니다. 전적으로 처칠의 책임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처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역 소령으로 자원 입대해 전선에 뛰어들지요. 속죄는 물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겁니다. 네 번째 실패도 역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재야에서 스탈린의 소비에트 제국에 대한 경고를 발합니다. 그가 적절히 인용한 ‘철의 장막’은 곧 냉전의 상징이 됐고, 처칠은 일흔여섯의 나이에 다시 한번 총리 자리에 오릅니다.

 그가 1945년 총선에서 패배한 뒤 은퇴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문 닫을 때까지 술집에 머무르는 게 내 신조다.” 애주가로 유명한 처칠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겠지요? 어떠한 실패가 앞길을 막아도 중도 포기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 것이 아니라면 최후의 승리가 누구 몫이겠습니까. 최후의 성공은 실패하는 순간 결정됩니다. 전략의 천재로 일컬어지며,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로이센의 헬무트 폰 몰트케 원수의 말이 그것입니다.

 “나는 항상 젊은이들의 실패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실패하고 물러서는가, 아니면 다시 서는가. 젊은이 앞에는 이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이 순간에 성공은 결정되는 것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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