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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다이어리 (12) ‘오거스타 내셔널’이 골프의 천국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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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처음 가본 천국은 실망스러웠다. 골퍼들의 ‘깃발 꽂힌 천국’으로 불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 이야기다. TV로 볼 때는 정말 그림 같았는데,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생각됐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게까지 절경은 아니었다. 기자의 미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감정이 메말라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골프의 천상 낙원으로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레이의 개울(Rae’s Creek)이 굽이쳐 흐르는 아멘코너 12번 홀과 13번 홀은 매우 멋졌다. 다른 홀들도 대체로 아름답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곳에 지은 코스는 아니며, 장비 발전에 대항하기 위해 전장을 늘리려고 티잉 그라운드를 무리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조화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코스의 아름다움으로만 본다면 한국에도 이보다 뛰어난 클럽은 많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나인브릿지를 비롯한 제주의 클럽들이나 파인비치, 골든베이, 안양베네스트, 몽베르 등은 오거스타 내셔널에 뒤질 것이 없다고 본다.

환상을 떨쳐버리니, 몰라도 될 것도 보였다. 선수들이 경기 중 급할 때 잠시 사라지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아냈다. 4번 홀과 11번 홀, 13번 홀 티잉 그라운드 뒤다. 특히 관중들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환상을 주는 호건의 다리 건너, 아멘코너의 심장인 13번 홀 티잉 그라운드 바로 뒤가 용변 장소로 이용되는 것은 약간 충격이었다. 최경주 선수에게 물으니 “지난해 우즈와 4라운드 내내 경기하면서 그곳에서 함께 볼일을 본 적도 있고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기자에겐 일종의 실낙원(Paradise Lost)이었다. 그러나 TV를 켜면 코스는 마법처럼 다시 아름답게 변했다. 미국 CBS 방송은 56년 동안 마스터스를 방송했다. 스포츠 사상 한 방송사가 한 이벤트를 이렇게 오래 중계한 예는 없다고 한다. CBS PD와 카메라맨들은 수십 년간 쌓인 노하우를 통해 홀의 꽃나무 위치와 각 라운드마다 핀이 꽂히는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카메라를 설치한다. 각 홀에는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중계탑이 있으며 카메라맨 한 명이 아니라 홀의 역사를 숙지한 보조요원이 있다. 또 후반 9홀에는 홀마다 해설자가 나가 있는데 브리티시오픈 우승자인 이언 베이커 핀치 등 거물들이다. TV를 보고 있으면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행적을 보듯 경기 상황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것도 매우 아름답게. 오거스타 내셔널은 가장 아름다운 골프장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게 포장된 골프장이다.

가장 아름답지는 않지만 기자는 오거스타 내셔널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다른 메이저대회와 달리 마스터스는 한 골프장에서 열린다. 75번의 대회를 치르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생겼고 클럽은 이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코스를 걷다 보면 벤 호건의 다리와 바이런 넬슨의 다리, 아이크(아이젠하워)의 나무, 니클라우스 음수대 등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오거스타 내셔널을 복낙원(Paradise Regained)으로 만든다. 코스에서 과거의 위대한 영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예쁜 꽃나무를 감상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다.

한국의 골프 코스에는 최경주와 양용은, 박세리를 비롯한 위대한 골퍼들의 발자취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흔적을 기록한 골프 코스는 거의 없다. 한국은 최초의 효창원 코스는 물론, 군자리 코스까지 뒤엎어 버렸고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의 메카 동대문 야구장까지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나라다.

멋진 이야기를 만들려 시도하는 골프장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해야 한다. 한국오픈을 치르는 우정힐스 골프장은 아멘코너를 본떠 실코너를 만들었다. 공중에서 내려다볼 경우 바다표범(seal)을 닮았다고 해서다. 그러나 아멘코너는 골프장의 귀퉁이에 있어서 코너라는 말을 썼다. 실코너는 골프장 한가운데 있다. 코너가 아니다.

성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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