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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수행 별 거 있습니까? 출퇴근하는 안거도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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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울 가회동 안국선원에서 만난 수불(修弗) 스님은 “화두에 절절한 의심이 걸려야 한다. 그럴 때 내 앞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렇게 의심이 걸리도록 곁에서 돕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선(禪)의 대중화가 가능할까. 선방의 수행자들도 허덕대는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법) 수행을 과연 대중에게 퍼트릴 수 있을까. 그 점에서 서울과 부산의 안국선원(安國禪院)은 일종의 시험장이다.

 여름과 겨울, 절집의 선방은 석 달씩 안거(安居)에 들어간다. 조계종의 1만3000명 스님 중 2000명 가량이 안거에 들어간다. 같은 기간 안국선원도 석 달씩 안거를 한다. 직장인과 주부, 학생 등 재가자(在家者·일반인)가 참가하는 안거다. 안국선원의 한철 안거 참가자는 서울과 부산을 합해 2000명이다. 안거가 끝난 후에도 매일 선원에 와서 수행하는 이들만 서울과 부산 각 600~700명에 달한다.

 12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안국선원에서 선원장 수불(修弗·59) 스님을 만났다. 그는 최근 『선과 문화』라는 계간지도 창간했다. 선의 대중화, 그 일환이다.

 
 -현대인은 먹고 살기도 바쁘다. 일상 속의 선(禪) 수행이 가능한가.

 “거기에 대해선 부처님께서 이미 답을 주셨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에 출가자에게만 가르침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인연 따라 가르쳤다. 무슨 말인가. 부처님은 불교의 생활화, 수행의 생활화를 보여주신 거다. 그걸 우리 시대에 잃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현대인에게 선 수행을 전하고 있다.”

 -언제부터 도시의 생활인에게 선 수행을 전했나.

 “1989년부터다. 부산 범어사 내원암에 있다가 산을 내려왔다. 당시 일반 신도들은 간화선을 전혀 몰랐다. 큰스님 주변에 있는 일부 신도들만 맛을 조금 보는 정도였다. 처음에 50명 정도 앉혀놓고 선(禪)을 가르쳤다. 그러다 실패했다. 신도들의 수행은 별로 진척이 없었다.”

 -왜 진척이 없었나.

 “그 이유를 찾으려고 석 달간 칩거했다. 신도들도 만나지 않았다. 실패의 이유를 곰곰이 따져봤다. 그랬더니 그 허물이 신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 허물이 있었다.”

 - 그게 무엇이었나.

 “잘 가르치지 못한 내가 허물이더라. 살펴보니 절집에서 내가 배웠던 방식대로만 했더라.”

 - 그게 어떤 방식인가.

 “화두만 달달 외는 식이다. 마치 문제를 달달 외듯이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문제를 외는 게 아니라 답을 찾는 것이더라. 그래서 신도들에게 ‘문제만 외우는 건 어리석다. 우리가 문제를 몰라서 괴로운 게 아니다. 답을 몰라서 괴로운 거다. 그러니 화두를 들었으면 답을 찾는 데만 집중하라’고 했다.”

 -예를 들면.

 “가령 ‘이뭣고’라는 화두가 있다. 사람들은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가 뭐꼬?’하는 문제만 외운다. 답을 찾으려고 안 한다. 그저 문제만 외우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염불 하듯이 화두를 왼다. ‘화두를 놓치지 말라’는 걸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건 오히려 문제만 붙잡고 있는 거다. 중요한 건 답이다. 화두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저녁에 피곤한 몸으로 퇴근한 직장인이 화두를 들고 수행하긴 쉽지 않다. 이들을 위해 어떤 변화를 줬나.

 “화두에 집중할 때 눈을 뜨고 하라고 했다. 자세도 상관없다고 했다. 다만 자려면 누워서 자고, 앉아서는 자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화두를 들었을 때 망상이 일어나면 그걸 없애지 말고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두라고 했다. 거기에 구애치 말고 화두를 들라고 했다. 그건 절집의 수행풍토에 비추어보면 다소 파격이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중심을 두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안국선원에선 1주일 만에 깨치게 한다’는 소문도 있다. 절집에선 이 소문에 대한 논란도 있다. 실제 어떤가.

 “안국선원에 1주일 참선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는 본래 부처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1주일이 아니라 단 하루 만에도 부처를 찾을 수 있는 완전한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 뜻이 ‘1주일 만에 깨치게 한다’는 말로 와전된 것 같다. 대신 1주일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체험을 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수행에 대해) 인가를 받은 사람도 아니고, 남을 인가하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간화선 수행 프로그램을 대중화하고자 하는 거다.”

 -수행에 참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도시의 생활인들이 선 수행을 하면서 ‘고정관념이 깨졌다’ ‘가족 관계가 좋아졌다’ ‘스트레스를 스스로 풀 수 있게 됐다’고 하더라. 참가자들은 화두를 통해 자기 앞에 놓인 거대한 벽을 만나게 된다. 그게 무너질 때 자유와 행복을 체험하더라. 내 역할은 화두에 절절한 의심이 걸리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거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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