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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공부의 신'이라 불리는 그들을 자살로 몬 까닭

중앙일보

입력

김태훈 원장의 '소아 정신 건강'

정신과 전문의
김태훈 원장

카이스트 학생이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도미노처럼 자살을 선택했고, 이 문제가 떠들썩한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삶의 질 또한 가장 낮다고 한다. 이번 카이스트 학생 자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학생들의 자살율은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국내 유수 대학인 카이스트에서 자살이 이어지면서 이 문제가 크게 대두된 것이다.

카이스트는 짧은 시일 내에 국내 대학에서 명문 대학으로 성장하였으며 세계 대학 평가에서 카이스트 순위는 198위에서 69위로 올라섰다. 이는 우리 나라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 보다 더 앞선 순위이다. 공과 대학을 나와 취직이 잘되지 않아 공대를 기피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카이스트가 단시일 내에 국내 최고가 가능하였던 것은 카이스트 학생들과 교수들이 그만큼 더 연구에 매진하였기 때문이다.

우수한 인력을 배출하면서 명성을 쌓았던 카이스트가 최근 대학생들의 성적 비관에 따른 연쇄 자살로 인하여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살하게 된 것은 성적이 3.0이하로 하락시 0.1학점마다 60만원씩 늘게 되는 징벌성 대학 등록금 제도 때문이라 하여 이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카이스트는 국내에서 남들보다 월등히 앞선 학생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그중에서 과고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여 조기 졸업한 학생 그리고 일반고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여 입학한 학생들은 남들보다 많은 공부를 하였고, 학업 경쟁에서 뒤처진 적이 없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공부를 위해 반대표 활동, 봉사 활동 혹은 집안 대소사 참여를 포기하면서 오로지 공부만을 한 학생들이다. 공부에 관한 남들보다 더 월등한 실력을 보인 학생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자신이 과반수 이하 성적이 나오거나 앞선 등수가 되지 못할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 수재가 카이스트에 모여 경쟁을 벌이게 되면 여기에서 다시 서열이 발생하게 된다. 이 서열에서 학생들은 숙제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는 수난을 받고, 태어나서 난생 처음 과반수도 미치지 못하는 학점을 받게 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세상일들과 담을 쌓고 공부에만 몰입했던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능력이 더욱 취약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문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그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대학 입학 후 공부를 하지 못해도 명문대에 입학하였으니 무슨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카이스트란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과거에 그렇게 하였듯이 그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고 이런 구조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낙오하기 마련인 것이다.

카이스트 학생 자살은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오로지 경쟁만을 강요하는 우리 나라 교육의 한 실태를 보여주는 것이다.‘공부의 신’이라고 불린 수재들이 명확한 답이 존재하는 익숙한 문제만을 풀줄 알았지만, 답이 없는 모호하고 낯선 상황에 대한 해결 능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며 실수를 통해 보완하는 과정에서 오는 좌절에 대한 인내력 부족과 자신이 원하는 해답을 얻지 못한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카이스트에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대부분 우리 나라 교육의 감추고 싶은 한 단면이기도 하다. 아까운 인재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낙오자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패자 부활전과 같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김태훈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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