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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KAIST발 대학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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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KAIST에서 잇따라 학생 네 명과 교수 한 명이 자살한 사태는 분명히 커다란 비극이다. 각계에서 다양한 수습책과 재발 방지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도 어제 서남표 총장을 불러 책임 추궁과 함께 대응책을 따져 물었다. 걱정인 것은 경쟁 시스템을 핵심으로 하는 KAIST의 대학개혁 작업이 모든 악(惡)의 원천인 양 몰아붙이는 일부의 태도다. 선의의 경쟁 없이 어떻게 세계적인 학문적 성취가 가능하겠는가. 국민이 아까운 세금을 들여 KAIST 영재들이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게끔 배려한 것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전 세계 과학 두뇌들과 경쟁을 벌이라는 뜻 아니었는가.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수월성(秀越性) 확보는 연구와 교육의 핵심 목표다. 수재들이 몰리는 KAIST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의 환경이다. 우리가 성적에 따른 차등적 등록금제의 득(得) 못지않게 실(失)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다. 서 총장은 어제 국회에서 “차등 등록금제를 차등 장학금제로 바꾸겠다”고 답변했는데, 이런 식으로 경쟁 환경을 개선할 여지가 찾아보면 매우 많을 것이다.

 영어 강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사·한국문학·논술 등 국어기반 과목을 제외하고 일률적으로 영어를 쓰는 제도가 부작용을 부른다면 다른 방법으로 영어 실력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지 마치 영어가 문제인 것처럼 탓할 일이 아니다. KAIST에서 공부했다는 사람이 외국 학자들과 영어 대화도 못 하고 영어로 논문 하나 쓰지 못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말할 자격조차 없다. 따라서 사태 수습의 초점은 선의의 경쟁을 벌일 환경을 마련해 주는 데 맞추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경쟁 자체를 백안시해서는 대학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동안 KAIST는 대학 개혁의 선도자 역할을 했다. 교수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하고 연구 실적이 부진한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정책은 다른 대학들의 ‘철밥통 깨기’ 개혁으로 이어졌다. 인성·창의성 중심 선발, 입학사정관제 등에서도 앞서나갔다. 그 결과가 더 타임스지(紙)의 세계 대학 평가에서 공학·정보기술(IT) 분야 21위, 자연과학 분야 39위라는 실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부금 유치 건수가 2006년 566건에서 2009년 3324건으로 확 늘어난 것도 KAIST에 대한 국내외 평가가 획기적으로 높아진 덕분 아니겠는가.

 세계 일류를 향한 KAIST발(發) 대학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다른 대학들도 KAIST를 본떠 국내 대학들의 국제 경쟁력이 다같이 높아지도록 해야 옳다. 그것이 흔쾌히 세금을 내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다. 자살이라는 비극에 대해서는 세심한 장·단기 개선책을 세워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 그 과정에서 개혁 조치들을 보완하고 경쟁 환경을 개선해야지 마치 개혁과 경쟁 자체가 사태의 주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고 갈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