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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 기회 준 백선엽 장군은 제2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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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부라크 카라쿠르트의 아버지 하이다르 카라쿠르트(2003년 작고·왼쪽)가 1950~1953년 한국전 참전 중 전우와 함께 찍은 사진. 시기·장소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60년 전 터키 병사들이 한국의 전쟁 고아들을 위해 ‘수원 앙카라 학교’를 만들어 밥과 희망을 나눠줬습니다. 이젠 대한민국이 참전 용사들의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꿈을 키워주고 있습니다. 가슴 벅찬 일이지 않습니까.”

부라크 카라쿠르트

 부라크 카라쿠르트(33·Burak Karakurt). 한국전에 참가한 터키 참전 용사의 아들이다.

지난해 9월 한국전쟁기념재단(이사장 백선엽)의 첫번째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돼 한양대에서 석사과정(정치외교학)을 밟고 있다. 6년 전 한국 관련 책을 2권 냈고,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사를 담은 홈페이지(http://www.korekahramanlari.org)도 운영하는 한국통이다.

6·25전쟁 60주년인 지난해 ‘받았던 나라에서 되갚는 나라로, 교육으로 보은한다’는 모토로 설립된 한국전쟁기념재단이 그를 첫 장학생으로 선발한 이유다. ‘한국전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재단은 22개 유엔 참전국의 후손을 대상으로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카라쿠르트를 비롯, 에티오피아·태국·콜롬비아 출신의 참전용사 후손 19명에게 유학 장학금을 지급했다.

지난 주말 서울 한국전쟁기념관에서 카라쿠르트를 만났다.

 -이스탄불에서 촉망받는 변호사로 일했다고 들었다.

 “변호사 생활은 밥벌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연구는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일이다. 2003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전장에서 쓴 일기장을 주셨다. 전쟁의 공포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글과 시로 담겼다. 그 가운데 ‘수원-앙카라 학원’ 얘기가 이 길로 나를 이끌었다.”

 -앙카라 학원은 어떤 곳인가.

 “수원에서 근무하던 터키 군인들이 전쟁 고아들을 위해 만든 학교다. 처음에는 텐트에 모아 돌봐주다가 아이들 수가 100명이 넘자 학교를 짓고 가르쳤다. 피아노와 발레까지 가르쳤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이 학교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카라쿠르트는 이후 일기의 흔적을 찾아나섰다고 한다. 터키 참전용사 133명을 인터뷰하고 서울을 방문해 앙카라 학교를 다닌 60대의 한국인들도 만났다. 2005년 펴낸 『한국의 터키 영웅들』 『앙카라 학교』 등 책 2권이 그 결실이다.

 -참전국 용사의 아들로 한국 유학 생활을 하는 느낌은.

 “한국의 어르신들은 나를 아들로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통해 엮인 가족 같다. 지난해 말 장학금 전달식 때 나도 모르게 백선엽 장군님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입을 맞춘 뒤 내 이마에 장군님의 손등을 댔다. 존경하는 어른께 하는 터키식 인사다. 백 장군님이 나에겐 ‘제2의 아버지’다.”

 -향후 계획은.

 “터키엔 극동아시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한국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터키 관계를 내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한국 전문가가 되고 싶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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