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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KAIST 흔들리면 세금 낭비”… 총장·교수·학생 모두 귀 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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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방현
사회부문 기자

지난 8일 오후 7시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창의관 1층 터만홀 강의실. 서남표 총장과의 간담회를 위해 좌석과 복도를 가득 메운 학생 400여 명은 숨을 죽인 채 출입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최근 학생 4명의 잇따른 자살을 놓고 서 총장과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벌이자는 분위기였다. 7시 정각이 되자 서 총장 대신 이승섭 학생처장이 등장했다. 그는 “간담회를 공개로 진행하면 총장은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학교의 문제점이 외부에 공개되면 교수·학생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학생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KAIST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총장과의 대화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서 총장은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학생들은 허탈했다. 그렇지만 애타게 기다렸던 ‘총장과의 대화’ 시간을 무산시킬 수는 없었다. 학생들이 양보했다. 서 총장은 약속 시간보다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간담회장에 들어섰다. 간담회는 3시간 넘게 지속됐다. 열기가 뜨거웠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총장과 학생들이 충분히 ‘소통’했을 것으로 기대했다. 간담회 뒤 학생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대화는 했지만 소통은 이뤄지지 않았다. 총장님의 인생철학 강의만 들은 느낌이다.”

 서 총장이 혁신을 통해 KAIST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책임의식도 불어넣었다. KAIST는 국민의 세금(연간 2000억원)으로 운영된다.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 엘리트를 양성하려고 세금을 쓰는 것에 납세자들은 동의한 것이다. 국민이 최근 잇따른 학생 자살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학생들의 불만을 서 총장이 무시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서 총장의 일방통행식 학교 운영에 반감을 갖고 있다. 서 총장은 이런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자세가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상당수 학생이 “총장이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간에 간담회장을 박차고 나왔다. “소통을 위해서는 총장의 의견을 경청하는 게 기본”이라는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지금 학교에 필요한 건 총장·교수·학생들이 귀를 열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서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KAIST가 흔들리면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 낭비된다는 점을 학교 구성원들은 알아야 한다.

김방현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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