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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KAIST의 비극, 서남표식 개혁 재검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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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KAIST는 대한민국 과학 두뇌의 산실로 불린다. 이런 KAIST가 개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올 들어 석 달새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KAIST의 교육시스템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살 이유가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학교 교육환경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무한경쟁 시스템에 대한 학생·교수들의 불만이 크다. 2006년 취임한 서남표 총장은 ‘경쟁 유도’를 핵심으로 하는 개혁 방안을 밀어붙였다.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강화와 연구 부진 교수 재임용 탈락 등의 방안은 한국 교수사회의 철밥통을 깨는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학생 개혁 방안인 성적에 따른 차등적 등록금제, 낙제 과목 재수강 금지 제도, 100% 영어강의 등은 득(得) 못지않게 실(失)도 많다는 점이다.

 학점 미달자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부과한 것은 학생들의 공부를 장려하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게 뻔하다. 영재 소릴 듣던 학생들에게 낙오자라는 정신적 패배감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다. 징벌적 방법보다는 칭찬과 격려로 학구열을 북돋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국제화를 앞세운 100% 영어강의도 학생들의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학습량만 늘리는 부정적 측면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세계 일류 대학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학생들이 “우린 이런 학교를 원하지 않았다” “이 학교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분위기에서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경쟁력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이제라도 학교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KAIST의 교육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징벌적 등록금제를 폐지하는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서 총장은 구성원의 신임을 다시 묻고, 교육시스템 개선에 장애가 된다면 용퇴하는 게 옳다. KAIST가 조속히 사태를 수습해 한국 과학교육의 메카로서의 역할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