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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변명’ … “온갖 노력에도 감당할 수 없는 위기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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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조제 소크라테스 포르투갈 총리가 6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구제금융 신청을 자국민에게 알리고 있다. [AP=연합뉴스]


국가 부채위기가 스페인 문턱에 이르렀다. 옆집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했다. 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조제 소크라테스(54) 총리는 텔레비전 연설에서 “온갖 노력을 했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정부는 유럽연합(EU)에 재정적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총리는 구제금융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런던 자금시장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구제금융 규모가 750억 유로(1070억 달러, 118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른 재정위기 국가 사례와 비교하면 조금 적긴 하다. 그리스는 970억 유로를, 아일랜드는 960억 유로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갚기 위해 순차적으로 EU 구제금융펀드에 손을 내밀 예정이다. 당장 이달 중순에 42억 유로를 갚아야 한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올 12월에는 더 늘어 200억 유로에 가까운 돈을 상환해야 한다. 시장은 구제금융 신청을 예견했다. 앞서 포르투갈 국채 금리가 치솟았다. 포르투갈이 시장에 돈을 조달했다가는 눈덩이처럼 늘어난 이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포르투갈이 이른바 ‘위기의 임계점’을 지난 셈이었다.

 예상했던 일이라서 그런지 6일 유럽과 미국 주요 증권시장은 잠잠했다. 영국 FTSE100 지수 등은 0.15~0.56% 정도 올랐다. 뉴욕 다우지수도 0.26% 상승했다. 세계 최대인 런던자금 시장에서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런던은행 간 단기자금 금리인 달러 리보의 3개월 금리는 조금 떨어졌다. ‘시장은 예견된 사건엔 놀라지 않는다’는 말이 맞아떨어졌다.

 포르투갈은 최근 보름 동안 ‘위기의 궤적’을 밟아왔다. 지난달 23일 재정긴축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소크라테스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내각이 모두 사퇴했다. 현재 소크라테스는 총선이 예정된 6월까지 정부 관리를 맡고 있을 뿐이다. 헤지펀드 등은 포르투갈 국채 등을 공매도했다(울프팩). 구제금융 신청으로 그 국채 값이 더 떨어지면 목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의 관심은 이제 스페인에 집중되고 있다. 스페인 경제 규모는 유로존(유로 사용권)에서 4위다. 스페인 공공부문이 짊어진 외채는 5460억 유로 정도다. EU가 설정한 구제금융펀드보다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리스(1100억 유로)나 포르투갈(960억 유로)보다 몇 곱절 많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경제학) 뉴욕대 교수는 “스페인이 위기에 빠지면 시장은 EU의 구제능력을 의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 다음 단계는 유로 시스템에 대한 회의다. 글로벌 시장에서 스페인이 ‘재정위기의 종결자(mother of fiscal disasters)’라 불리는 이유다.

 요즘 스페인의 실물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해 스페인의 성장률은 0.6%로 유로존에서 그리스와 아일랜드 다음으로 낮았다. 실업률은 지난해 말 현재 20.33%다. 대공황 절정기인 1933년 미국 실업률이 24~25% 수준이었다. 은행들은 거품 시기에 땅을 담보로 빌려준 뭉칫돈을 돌려받지 못해 추가 대출을 꺼리고 있다. 돈이 돌지 않아 경기가 더욱 침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세수가 줄어 국가 부채위기가 심화하는 모습이다. 이날 블룸버그는 “EU 정책 담당자들은 포르투갈 사태가 스페인 위기의 서막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이미 본막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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