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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만드는 하모니 … 이웃에겐 ‘사랑의 보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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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프로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연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선물 하는가 하면 몸이 아픈 환자들에게 ‘마음의 약’을 제공하기도 한다. 5일 오후 7시30분 천안시청 봉서홀 에서 3번째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는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의 연습 현장을 찾았다.

5일 오후 7시30분 천안시청 봉서홀에서 제 3회 정기공연을 갖는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열정만큼은 ‘프로’

27일 일요일 오후 5시 천안시 서북구 부성동 주민자치센터 연습실.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클래식 ‘넬라 판타지아’의 잔잔한 선율이 문틈으로 흘러 나왔다. 일반인들이 듣기에도 빈틈없는 하모니는 성인 오케스트라의 연습실로 잘못 찾아오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일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연습실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60여 명의 앳돼 보이는 남·녀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에 몰두하고 있다.

 바이올린, 플롯, 첼로, 비올라, 클라리넷 등 여러 가지 악기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은 5일 정기공연을 앞둔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 단원들.

 초등생부터 중학생까지 음악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모여 만든 오케스트라다.

 재미있는 사실은 단원 모두가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비전공자들이라는 것. 그저 음악과 악기, 오케스트라가 좋아 몰려든 청소년들이다.

 바이올린을 다룬 지 고작 2개월째인 여중생, 화가가 꿈인 남중생, 겨우 학교에서 곱셈과 나누기를 배우고 있는 막내 9살 초등생 등 단원 면면은 특별했다. 그렇기에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는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연상케 했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대형악기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배태석(오성초 5년)군은 “바이올린을 배우는 누나가 먼저 재미있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들어오게 됐다”며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낯설기도 하고 경력도 얼마 안돼 어렵기도 했지만 한 달 정도 지나니 너무 재미있고 연습 때 마다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단원 중 맏언니 최인혜(서여중 3년)양은 “음악을 즐기면서 활동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학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 한 활동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막내 이종훈(불당초 3년)군도 “큰 공연을 앞두고 있어 많이 긴장된다”며 “하지만 형 누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음악 통해 다양한 활동

비영리 법인에 준하는 단체인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는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자아 형성 기회와 예술적 재능을 발견 할 수 있는 음악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지난 2009년 창단됐다. 현재는 60여 명의 초중생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웃과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한 공연을 통해 봉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또한 매년 정기공연 기회를 만들어 자신감을 키워주고 있다.

 하지만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가 창단 초기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창단을 하기까진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은 탓에 지원자가 많지 않았고, 단원들 학부모들은 “비 전공 학생들이 무슨 공연이냐”며 단순히 취미로만 음악을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학부모 김미선(42·여)씨는 “창단 초기에는 학업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했다”며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기에 못이기는 척 들어는 줬지만, 어디까지나 공부에 지장을 받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짓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지난해 9월의 어느 날. 천안 불당동 작은 공원에서 음악회를 한 후 상황이 변했다. 소수 인원이지만 멋진 공연을 펼친 청소년들은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푹 빠졌고,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청소년도 늘어났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작은 음악회를 보고 난 학부모들도 어느새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의 열성 팬이 돼 버렸다.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의 창시자이자 사무국장 권윤한(42)씨는 “창단 초기에는 일체의 회비 없이 강사들의 사비를 털어 오케스트라를 꾸려 나갔다”며 “공원에서 펼쳐진 작은 공연은 소극적이던 학부모들에게 큰 감동을 줬고 지켜보던 주민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지원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는 지원자가 넘쳐 간단한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뽑고 있으며, 뽑힌다 하더라도 대기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우리 실력 한번 보실래요?”

그렇기에 이번 정기공연은 라인 유스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지켜온 이들에겐 남다른 의미다. 청소년 단원들도 이번 공연에서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선보이겠다는 다짐을 갖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3시간 동안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에도 어린 단원들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없다. 더구나 휴일을 반납하면서 까지 연습을 하는 것에 대한 불평도 없다. 학부모들도 스스로 ‘자모회’를 결성해, 쉬는 시간에는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는 등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자모회 김은숙 대표는 “많은 우려 속에 시작했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며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정서적으로 한층 성숙해 지는 모습을 볼 때 ‘단원에 들어오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정기공연에는 자모회원들 중 몇 명이 무대 위에 올라가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노래 공연도 펼칠 계획이다.

박종명(39·여) 회원은"이번 연주회에 단원들과 함께 할 수있게 돼 가슴이 설랜다"며 "공연뿐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선 바자회 등도 따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휘자 안기갑(40)씨는 “음악을 전공하는 아이들이 아닌 만큼 공연을 하기엔 연습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하지만 음악을 듣고 표현한다는 자체가 너무 기특하고 기쁘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공연장에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회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화정(31·여) 바이올린 강사도 “아이들의 실력보다 그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며 “아마추어지만 프로 못지 않은 연주와 무대매너를 선보일 각오가 돼 있다”고 거들었다.

▶문의=041-522-6633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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