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곽재원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올재팬’ 체제로 부흥 나선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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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곽재원
대기자

“과거로 돌아가는 복구(復舊)를 넘어 멋진 도호쿠를, 멋진 일본을 만들어 가는 큰 꿈을 가진 부흥(復興)계획을 추진하자.”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라는 전후 최대 위기를 맞아 국가 총동원 복구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언론, 정·재계, 학계의 관심은 향후 국가비전 짜기로 쏠리고 있다.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식산흥업(殖産興業)을 기치로 내건 메이지유신(1868년)의 정신을 되살리며 일본형 신산업모델을 다시 그리고 있다. 전후 일본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이른바 태평양 벨트(도쿄권에서 오사카권을 잇는 공업지역)를 능가하는 새로운 도호쿠(東北) 벨트(도호쿠의 최첨단 산업 집적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 제조업의 중심은 1990년대 중반까지도 태평양벨트였다. 그 이후부터는 도호쿠에서도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과 토지, 교통인프라 정비에 의한 접근성 확대, 국립 도호쿠대학 등 교육기관의 충실, 기업유치 노력 등을 이유로 첨단제조업이 착실히 잇따라 들어섰다.

 전후 일본 경제성장은 산업구조 개혁과 궤를 같이해 왔다. 1950년대에는 섬유 등 수출형 경공업이 산업의 주역이었다. 60년대의 고도경제성장기에는 중후장대로 불리는 철강과 석유화학이 산업의 주역이었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공공사업과 내구소비재 등의 내수였다. 73년 제1차 석유위기를 계기로 경박단소라는 전자 분야가 비약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 이후는 자동차가 일본 산업의 주역으로 뛰쳐나왔다. 지금 일본 경제는 자동차와 가전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종합연구개발기구(NIRA) 이토 모토시게 이사장은 “이들 산업은 지금부터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산업의 주역을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일본 경제의 활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경제산업성도 ‘산업구조비전 2010’ 보고서에서 자동차에만 의존하는 ‘외다리 타법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은 성숙화하는 국내 소비, 성장하는 아시아 경제, 자동차와 가전의 해외 이전 등 변화의 한복판에서 다음 경제를 리드할 산업을 절실히 찾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점에서 동일본 대지진은 산업구조개혁의 걸림돌을 치워 주면서 도호쿠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미야기·이와테·후쿠시마 등 3개 현의 전기·전자·정밀기계 생산액은 연간 3조2000억 엔 (약 41조원)이며 이 중 92%가 현 밖으로 출하된다고 한다. 금액은 적지만 중요한 부품이 많아 그 생산이 줄면 반도체·전기전자 중심의 일본 업체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또 이들 3개 현에 아오모리·아키다·야마가타까지 넣은 도호쿠 6개 현의 국내총생산(GDP)은 겨우 6% 정도지만 기간산업의 이 지역 의존도가 생각 외로 높다. 특히 전자부품 등에서 국내 생산액의 비율이 10%를 넘는 분야도 많다.

 도호쿠가 이대로 쇠퇴한다면 자동차산업도 포함해 일본 제조업 전체가 붕괴한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전문가들은 차제에 이 지역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지향형의 산업집적지로 재탄생시키야 한다며 지역 부흥비전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전자·자동차 부품 집적지에서 신흥개도국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압도적인 고부가가치산업의 집적지로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산업구조개혁은 도호쿠를 플랫폼으로 삼아 속도를 낼 것이다. 그 배경에는 대지진 후 일본을 비롯해 많은 외국 기업들이 재빨리 부품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을 바꾸고 있는 데 따른 위기감도 있다. 95년 1월 한신 대지진 후 고베항이 파괴돼 복구까지 2년이 걸리는 동안 국제허브 기능이 부산과 상하이에 넘어간 채 여태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가 있어서다.

 간 나오토 총리는 대지진 발생 한 달이 되는 오는 11일 민간 유력자, 지역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부흥구상회의’를 출범시킨다고 한다. 산을 깎아 고른 땅에 주택지를 만들고 어항까지 통근하게 하며, 바이오매스(생물자원) 연료를 지역난방으로 하는 에코타운, 복지도시 등을 건설해 세계 제1의 모델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올 재팬’(All Japan) 체제로 부흥에 나선 일본-. 그 미래가 도호쿠에 달려 있다.

곽재원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