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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부모 됨의 자격과 역할, 섹스… 모든 게 다 달라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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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10면

고도의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 지금 같은 남녀의 차이는 희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 공상과학(SF)영화 ‘공각기동대’가 묘사하는 서기 2029년은 인간이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을 누구나 이용하는 네트워크 사회다. 영화에선 필요에 따라 육체를 복제하거나 주요 장기들을 기계로 대체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 나아가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을 질문하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남녀 간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필요에 의해 신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데 구태여 특정한 성의 정체성과 역할을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발달과 미래의 여성

그러나 기술의 발달이 정말로 남녀의 경계와 차이를 사라지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결코 쉽지 않다. 적어도 초기에는 기술 사용 비용이나 접근권에 있어 계층이나 성별·인종 및 민족 간 격차가 발생할 것이고, 이는 새로운 불평등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위력만큼이나 기술이 초래할 사회적 파장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열린 토론의 구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남녀의 차이는 새로운 방식과 형태로 유지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세계 최저 출산국가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생명 재생산 기술의 발달과는 무관하게 결혼·출산을 더 이상 삶의 최우선과제로 생각하지 않는 젊은 세대가 늘어감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혼인연령은 더욱 늦어지고 혼인율 또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바꿔 말해 여성이 과거처럼 결혼과 가족생활에 집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의사소통 방식의 혁명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대인들은 이동하면서도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는 열린 네트워크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특별한 유대감을 공유하고 확인해야 하는 순간조차 ‘저곳’에 있는 타인과의 네트워크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소통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구와도 순수한 관계에 몰입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느슨하고 임의로운 관계가 확산되는 정보 지배 사회에서 결혼은 더 이상 영속적인 관계의 상징이 되기 어렵다. 더욱이 도처에서 제공되는 상품화된 성적 자극과 욕망의 기회구조는 과거 혼인 방식과는 다른 성적 긴장과 친밀성의 추구를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재생산기술의 발달로 미래 사회에서는 ‘부모 됨’의 의미마저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가 묘사한 것과 같이 ‘부모 됨’의 자격과 역할마저 ‘아이’를 대체할 로봇의 구매를 통해 쉽사리 시장화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지금처럼 자녀 출산과 양육이 전적으로 개인 선택에 좌우되는 현실에서 모든 여성이 획일적으로 자녀 보살핌의 전담자이자 가족의 감정관리사로 살아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도 100세 장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5세로 기대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38.2%에 달해 세계 최고령사회로 전환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 최저 출산에 최고령국가가 되면 평생 자신의 부양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판이다.

이런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을 넘어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과 경력 관리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받아들일 것이다. 출산과 수유기간마저 최소화할 만큼 자신의 시장 지위는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여성은 결혼·출산보다는 직업 주기에 따라 인생 2모작, 3모작, 필요하다면 4모작까지 대비해야 하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힘이 보태진 미래 사회에서 여성의 직업활동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대부분 제거될 전망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으로 들어온 여성의 퇴로 역시 닫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일부 여성은 일터에서 ‘새로운 전사’로 재탄생하는 대신 과거와 같은 여성의 삶을 찾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여성들은 길어진 수명만큼이나 의지와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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