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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스트레스가 만든 비극 … 충격의 KAIS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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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재승 교수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면 교수 방문을 두드려 주세요. 제발….”

 KAIST 정재승(바이오 및 뇌공학과·38) 교수가 3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그의 글에는 충격에 빠진 KAIST의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

 올해 들어서만 KAIST에서는 학생 3명이 잇따라 자살했다. 4학년 장모(25)씨는 29일 오후 1시25분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이에 앞서 20일에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2학년 김모(19)군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1월 8일에는 1학년 조모(19)군이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교수는 이런 비극이 없어져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호소하면서 사과의 심정도 전달했다.

 “KAIST의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와 경쟁의 압력 속에서 삶의 지표를 잃은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학생들의 일탈과 실수에 돈을 매기는 부적절한 철학에 여러분을 내몰아 참담합니다.”

 정 교수는 “학교가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이 학문의 열정과 협력의 아름다움, 창의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도록 장학금 제도를 바꾸라고 주장했다.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관계 개선도 필요하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이날 KAIST 교정은 침울했다. 충격에 빠진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잇따른 학생들의 자살이 다른 학생에게도 영향을 미쳐 ‘베르테르 효과(모방자살)’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공부 스트레스를 덜어 주기 위해 체육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1학년 학생의 경우 의무적으로 운동 종목 한 가지를 선택해 수업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성적에 따른 수업료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납부액을 조정하는 방안을 총학생회와 협의 중이다. KAIST는 원래 등록금이 무료다. 다만 2007년 도입한 새 제도에 따라 학생이 일정한 성적에 미치지 못하거나 9학기 이상 재학하면 등록금 일부를 내야 한다. 이런 차등 등록금 제도가 학생들에게 부담을 줬다는 지적이다. 재학생 전모(20)군은 “잇따른 학생들의 자살은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등록금 제도 등 시스템도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생 인성 함양을 위한 ‘명예제도(마일리지)’ 도입도 검토 중이다. 예를 들어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킨 경우 포인트를 주는 방식이다. 포인트를 많이 적립한 학생에게는 장학금 혜택 등을 준다. 현재 운영 중인 학생 상담센터 상담 전문가를 현재 4명에서 6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와 함께 축제기간에 오후 강의를 하지 않고 축제만 즐길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은 축제 때도 오후 강의를 해 학생들이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김윤수 홍보팀장은 “학생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이런 단편적인 대안은 본질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며 “현재 운영 중인 학생의 학교 생활 지원 프로그램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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