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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원과 88만원 - 국산극장용애니메이션의 가치는...

중앙일보

입력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비디오테이프를 정리한다고 써붙여놓은 곳이 있으면 꼭 한번씩은 들어가 본다. 물론 대부분 그냥 볼만한 영화 몇편만 사오는 허탕을 치는 편이긴 하지만 가끔씩은 건질만한 애니메이션테이프를 건지는 날도 있기는 하다. 일본에 여행갔을 때 애니메이션LD 뒤지면서 좋아했던 작품이 발견했을 때도 정말 기쁘긴 하지만(교토까지 가서 달랑 1장만 골라서 온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먼지쌓인 테이프 속에서 어릴 때 극장에서 본 작품들을 다시 만날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67년 〈홍길동〉을 시작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가장 최근적인 〈성춘향전〉까지 대략 100편이 좀 넘는 수가 제작되었다. 대략 한해에 3편 정도는 제작된 양으로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물론 76년 〈태권V〉가 나오기전 1969년에서 75년까지 총 5편 정도만이 제작된 시기도 있고, 1982년도엔 한해에 무려 10편이나 개봉되는 등의 부침을 거치기는 했지만, 해외에서 수입되는 극장판은 디즈니밖에 없었던 나라치고는 그 질을 떠나서 굉장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생산량을 자랑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100편에 달하는 극장판애니메이션들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우리나라가 이때까지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실감할 수 밖에 없다. 연도순 정리조차 잘 되어있지 않고 상당수의 작품은 유실되어 보이질 않고(최초의 극장판인 〈홍길동〉조차 국내에선 원본 필림을 구하지 못해 해외로 수출되어 자막 작업된 필름이나 비디오판을 찾아다니고 있다), 필름이 존재하더라도 대부분 그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이 개인적 보관을 하고 있어서 그 보존상태가 열악한 편에 있다. 게다가 꿩 대신 닭이라고 비디오와 같은 별도 저장매체로 출시되어진 작품을 찾으려고 해도 그것 또한 용이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초기에 비디오로 출시된 작품들중 상당수가 BETA포맷으로 출시되어 포맷방식의 쇠퇴와 함께 사라진 경우도 있었으며, 시리즈물을 선호하는 국내 비디오샵의 운영방침(?)에 따라 엄청난 마케팅력과 역사로 밀어부치는 디즈니류를 제외하고는 극장판과 같은 단편 위주의 작품은 한참 구석에 비치되고 잊혀져 버리고, 7년정도인 비디오판권계약 때문에, 제작사의 행방불명, 도산 등으로 저작권자체가 붕 떠버려, 그 이후 출시되어지는 국내애니메이셔테이프들은 판권이 무시된 해적판으로 제작되어 덤핑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자켓도 조악하고(자켓만 봐선 정말 그 작품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커팅되고, 한편짜리가 2편으로 나누어져 나오곤 일도 허다하였다.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덕분에 보존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 나라 비디오테잎시장이 판매가 아닌 대여로 이루어지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거의 한가정에 비디오 1대씩은 있는 요즘에도 소장해논 정품 비디오가 10∼20개가 넘는 집의 비율은 거의 미미한 것이 국내실정이다) 비디오샵을 처분하면서 산출된 비디오테잎들이 계속적으로 도매상을 거쳐 다시 다른 비디오샵으로 나가는 리사이클 구조인데다가, 구석에 몰려있다보니 대여횟수도 많지 않아 10년도 전에 출시된 테잎들도 상태가 좋은 편인 것들을 종종 보이는 편이다. -

그런데 최근 몇 년새에 국내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국내애니메이션 테이프(주로 〈태권V〉나 〈마루치 아라치〉)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빈번해지면서 비디오 도매상가에서 몇몇(!) 애니메이션 테이프들이 도매상의 좋은 위치를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비디오로 대접받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500원에서 2000원 정도에 팔리던 중고〈84태권V〉테이프조차도 프리미엄을 얻어서 팔려는 가게조차 있었다.
물론 그들이 예쁘게 전시해 놓은 태입들은 손님들이 많이 찾았거나, 국내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것들로 실제로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잘 알고 비치해 놓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 예로 며칠전에도 한 비디오도매상에서 86년작인 〈
도깨비방망이〉와 82년도에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입체애니메이션 〈태극소년 흰독수리〉를 B급영화테입 하나와 묶어서 1000원에 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결국 한국 극장용 희귀 애니메이션테이프의 가격은 300원 이하부터 몇(?)만원까지 부르는게 값이라는 이야기다.)

해외에선 컬렉션이 되는 물품들이 엄청나게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의 컬랙션 물품들을 주로 취급하는 〈만다라케〉나 〈K-BOOKS〉같은 곳을 가면 여러 가지 프리미엄 상품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있는데 애니메이션 소프트중 가장 적은 단위에서 가장 비싸게 본 것은 〈파이브 스타 스토리〉 LD 1장에 8만엔(요즘 환율로 환산하면 88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표를 붙여 놓은 것을 본적이 있다. 물론 요즘은 가격이 좀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일본 소프트샵을 돌다보면 2∼3만엔하는 LD나 10만엔이 넘는 LD박스를 보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조악하게 만들고 상태보존이 꽝인 국내 애니메이션 테이프에 당장 높은 가격을 붙여놓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영상산업이 발전하는 현대사회속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영상콘텐츠에 대한 관리인 것이다. 지금은 일부 노래방에서나 쓰고 있는 LD라는 매체가 도입되었을 때도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중에선 LD화 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요즘 각광받는 매체인 DVD중에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면 〈짱구〉나 〈웰러스&그로밋〉같은 해외작품만 있을 뿐이다. 10년 뒤 국내애니메이션 역사를 뒤돌아 볼 때는 최소한 원본포맷 그대로의(국내 출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TV사이즈에 맞게 잘려져 스탭진이 소개 될 때는 성이나 뒷 글자가 잘려서 나온다) 전체작품들을 볼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자기 몫조차도 못 찾아먹는 바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태권V 프리미엄 DVD콜렉션SET의 출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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