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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년 - 비보험 진료비 공개 의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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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5일 서울의 S대학병원 4층 폐암 병동 치료실 앞. 충남 아산에서 온 이상우(56)씨가 폐암 투병 중인 부인(54)의 진료비 영수증을 꺼냈다. 병실이 없어 8일간 2인실에 입원한 탓인지 지금까지 쓴 비용(300만원)이 많이 나왔다. 이씨는 2인실이 보험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의사가 치료에 필요한 것을 해주려니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진료비도 꼼꼼히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씨처럼 비보험 진료비를 잘 모른다. 병원에 따지는 것처럼 보여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 돼서다. 서울 양천구 이모(29·회사원)씨는 병원 홈페이지 ‘비보험 진료비 공개 코너’를 찾아봤다. 암 치료를 받는 아버지(60)의 무통주사비(50만원)가 적정한지 다른 데와 비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병원별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손을 들었다. 우선 병원마다 비보험 진료비 내역을 담아놓은 데를 찾기가 어려웠다. 힘들게 찾아 검색 창에 ‘무통주사’를 넣었지만 검색 불가였다. 대부분이 영어로 돼 있거나 전문 용어를 한글로 그대로 옮겨놓아 비교할 수 없었다. 이씨는 “미로 찾기와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시행된 비보험 진료비 내역 공개 제도의 실상이 이렇다. 환자가 이 제도를 잘 모르는 데다 활용하려 해도 쉽지 않다. 지난해 시행 직후 병원마다 기준이 달라 비교가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으나 1년이 지난 뒤에도 그대로다.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면 환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이 향상된다. 병원 간 경쟁을 유도해 진료비 인하를 유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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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가 의료기관 공개 내역을 조사했더니 대부분의 큰 병원들은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난수표’처럼 돼 있어 이해할 수 없었다. 병원마다 분류체계가 다르고 용어가 영어나 전문 코드 형태로 돼 있다.

 대표적인 비보험 진료는 1~2인 병실료다. 서울대병원은 병실을 1·2·3등급으로 나누고 최저가와 최고가를 제시했지만 등급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강북삼성병원은 병실 구분 없이 ‘20%(최소·최대 20% 차이)’라고만 적시돼 있다.

 검사비는 더 복잡하다. 서울아산병원은 양전자단층촬영(PET) 전신(Whole Body) 검사가 ‘C-11’ ‘F-18’ 등으로 구분돼 있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은 뇌 자기공명영상촬영(MRI)과 관련, ‘MRI-Dynamic’, ‘MRI-Functional’ 등으로만 돼 있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서울대병원은 검색 기능이 따로 없어 일일이 뒤져서 찾아야 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비보험 진료비는 병원이 마음대로 정하는 데다 병원별로 제대로 비교할 수 없게 돼 있어 환자 부담이 계속 늘 것”이라며 “공개 항목을 표준화하고 홈페이지 초기화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게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료정책실 권용진 교수는 “소비자원 등이 병원 규모·지역·진료 유형별로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어 환자가 쉽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비보험 진료비 공개=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특진료·초음파 검사비 등을 말한다. 지난해 1월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모든 의료기관이 공개하도록 의무화됐다. 의원은 책자·홍보물·포스터 등을 접수창구에 비치하고, 중소병원과 대형병원은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위반하면 업무정지 15일과 300만원의 벌금 처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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