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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건 내 발뿐” 약수터로 경로당으로 … 제 살 길 찾는 수도권 초·재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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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은 요즘 여의도에 볼 일이 남아도 이 말을 남긴 채 뿔뿔이 흩어지곤 한다.

 “어서 지역구에 가봐야지….”

 치솟는 물가와 떨어지는 대통령·여당의 인기를 지켜보면서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 사이엔 제각기 살아나갈 방법을 꾀한다는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론’이 팽배해 있다. 그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지역구에서 ‘발이 닳도록 뛰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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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이계인 차명진(부천 소사·재선) 의원은 지난 주말 귀가하던 중 소방차가 비상출동하는 걸 봤다. 그러자 수행비서에게 “빨리 따라가자!”고 소리쳤다. 그의 목표는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소방차를 급히 따라간 차 의원은 화재에 놀란 주민들을 만나 위로한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

 차 의원은 이런 지역구 활동을 ‘새벽별 보기 운동’이라 부른다. 그는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하다 보면 새 구두가 석 달을 못 버틸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아침 등산 때도 주민들을 많이 만나려고 네 차례씩 산을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다 보니 “약수터에서 주민들에게 잡혀 막걸리로 아침을 때운 적도 있다”고 했다.

 소장파인 김용태(양천을·초선) 의원은 지역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해서 동료 의원들이 ‘지역구 귀신’이라 부른다. 그는 매달 두 번씩 동네를 돌며 ‘민원의 날’ 행사를 한다. 최근에는 행사에서 한 여성으로부터 “남편 바람기를 잡아야 하는데 흥신소를 소개해 달라”는 민원까지 받았다. 김 의원은 “그건 불법이고, 차라리 내가 남편을 만나 설득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지역구에 매달리는 데는 친이·친박계의 구분이 없다. 한나라당 우세지역으로 손꼽히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도 다르지 않다. 친박계인 이혜훈(서초갑·재선) 의원은 그는 늘 지역의 ‘아줌마 통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학부모들이 모인다고 하면 달려가기 위해서다. 그는 “이젠 5명만 모인다면 어디든 간다. 수백 명씩 모인 데만 가던 시절은 끝났다”고 했다.

 친이계인 김영우(포천-연천·초선) 의원은 29일부터 ‘정기 외박’에 들어간다. 1박2일간 마을 경로당에서 먹고 자겠다는 민생탐방 계획의 하나다. 김 의원은 내년 총선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경로당을 돌며 외박할 작정이다.

 ‘막무가내식 읍소형’도 있다. 친박계인 구상찬(강서갑·초선) 의원은 최근 지역구인 서울 발산동에 시립도서관 건립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세훈 서울시장을 일곱 차례나 찾아가 “나 좀 살려 달라”고 읍소한 결과다. 그는 지난해 말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할 때 이주영 예결위원장 ‘경호조’로 편성됐다. 이 틈을 타 이 위원장을 붙들고 “화곡동 어린이영어도서관 예산 30억원 안 줄 거면 그냥 여기서 같이 죽읍시다”라고 버텨 관철시킨 적도 있다.

 발품 못지않게 ‘두뇌’도 혹사시킨다. 친박계에서 탈퇴선언을 한 중립성향의 진영(용산·재선)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그런 그가 요즘 도시재정비촉진특별법 등 각종 재개발 관련 법률을 공부하느라 밤을 새우곤 한다. 지역구에 재개발 사업이 62개나 되다 보니 ‘재개발 박사’가 돼야 했다. 틈틈이 의학서적을 뒤져 치매예방법도 공부하고 있다. 경로당 강의를 위해서다.

 전여옥(영등포갑·재선) 의원은 “국회의원이 모두 구(區)의원이 된 것 같다”고 푸념했다. 그는 “나도 3년 동안 11번 돌린 의정보고서를 남은 1년간은 6번 내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품, 머리품을 파는 의원들조차 그 효과는 반신반의다. 정두언(서대문을·재선) 최고위원은 28일 “어차피 수도권 선거는 큰 ‘정치적 바람’이 좌우한다”며 “야당 바람이 불면 수도권 선거는 해보나 마나지만 그걸 알면서도 심란하니까 지역구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인 정 의원은 이날 의정활동보고서를 지하철역에서 직접 돌렸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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