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혁의 세상탐사] 천안함을 영구 보존해야 할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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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02면

사회부에서 경찰출입 기자를 할 때니 거의 20년 전 얘기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소매치기로 붙잡혔다. 피해자도 있었다. 나중에 풀려난 뒤에도 계속 울고 불며 가족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이들을 만나봤다.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검찰에 가서 당시 사건기록을 열람했다. 한눈에도 뭔가 이상했다. 주부가 시장에 나왔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다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비뚤배뚤 쓰는 게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받았다는 피해자의 진술서가 너무 일목요연하고 글씨도 깨끗했다. 이상해서 피해자 집에 가봤다. 아이들을 검거한 형사의 부인이었다. 형사가 자기 부인 이름으로 진술서를 작성해 아이들을 소매치기로 둔갑시킨 것이다. 해당 경찰관은 구속됐다.

교통사고든, 화재든, 붕괴사고든 현장 목격자들의 진술은 대부분 제각각이다. 모순되는 경우도 많다. 자기가 본 게 맞다면서 싸우는 사람까지 생긴다. 누가 나빠서가 아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받은 인상에 따라, 서로 다른 기억을 하게 되는 것이다.

26일은 천안함이 침몰한 지 1년 되는 날이다. 천안함이 차가운 백령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았을 때의 혼란상이 새삼 기억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병들도, 함장도 완전히 넋이 나갔을 것이다. 누군들 안 그랬겠나. 갑자기 배가 가라앉고 46명이나 되는 전우들이 사라진 마당에. 침몰 현장으로 달려간 구조선, 육지에서 천안함 쪽을 보고 있던 해병, 현장 상황을 보고받은 국방부의 통신병 등 수많은 사람들이 허둥댔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언론도 헤맸고, 청와대까지 왔다갔다 했다. 북한 소행으로 확인되진 않았다고 하다가, 북방으로 도주 중인 괴물체에 대해 사격을 했다고 하다가, 침몰시간이 몇 시라고 하다가, 아무튼 엉망진창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엄청난 사건이 터졌는데 혼란이 없을 수 없고, 모든 설명이 딱 떨어지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은 “도대체 왜 이리 왔다갔다 하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서로 다른 설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민주당 등 야당과 좌파성향 시민단체들이 천안함 침몰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것도 어느 선까지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지난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선 민주당 천정배 의원과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천안함 1주년 토론회가 있었다. 여기서 미국 버지니아대학 이승헌 교수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게 어뢰고, 거기에 1번이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는 건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그건 결국 이명박 정부가 백령도 앞바다에서 건졌는지 어떤지 모르는 어뢰에다 매직으로 1번이라고 써넣은 뒤 그걸 증거로 공개했다는 뜻이다. 이 교수가 똑똑한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멍청한 건지 헷갈린다. 내 상식으로는 그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정부는 없다. 대체 그런 명령을 내릴 사람은 누구며, 그 명령을 수행할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아무리 대한민국을 우습게 봐도 그렇지 이게 과연 정상인의 상식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의문인가.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여러 차례 이승헌 교수에게 인양한 천안함을 와서 보라고 요구했지만 이 교수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KAIST 송태호 교수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학자들의 토론에도 참여하길 거부한 이 교수는 물리학의 문외한들과 일부 언론에만 대고 주장을 하는 셈이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주장이 이어지는 현실이 참담하다.

일본 도쿄대에는 야스다 강당이 있다. 대학당국은 1968년 극렬 학생운동 세력의 점거투쟁 과정에서 불탄 강당을 43년째 보수하지 않고 있다. 천안함도 영구히 보존하길 바란다. 군은 천안함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한다. 거기에는 정부의 조사 결과와 함께 그게 조작이라고 주장한 정치인과 극소수 학자들, 시민단체의 이름도 꼭 함께 전시하길 바란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 과연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반드시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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