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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는 작품과 이벤트를 파는 것,60초 안에 바이어에게 영감 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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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02면

-크리스티가 지난해 세계 경매 회사 역사상 최고의 판매 총액을 기록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들의 걸작들을 내놓았다. 컬렉터를 흥분시키는 미술관급 작품들이다. 시장도 더 글로벌하게 확장됐다. 아부다비·카타르·홍콩·중국 등에서 새로운 바이어들이 왔다. 단순한 사업 확장을 떠나 동서양의 다국적·다문화적 링크를 만든다는 것이 이 비즈니스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다.”

-글로벌 고객에 대한 전략이 있다면.
“우리는 단지 런던이나 뉴욕만을 거점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다. 두바이·홍콩·모스크바 등 지역의 특수성에 맞게 우리를 바꾸는 노력을 해왔다. 내가 크리스티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내가 현재 위치에 절대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영국 사람이 아닌 핀란드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돌이켜보면 마치 공룡이 살던 시대처럼 느껴지지만 그게 불과 25년 전이었다. 우리는 77년에 뉴욕에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크리스티 설립 이래 200년이나 걸려 미국을 발견한 셈이다(웃음). 홍콩이나 모스크바 역시 진작 진출했어야 했다.”

-시장이 다시 좋아지는 듯한데, 고가 미술품 시장에만 국한된 건 아닌가.
“아니다. 크리스티 런던 분점인 사우스 켄싱턴 지점의 지난해 수익은 1000억원으로, 결과적으로 가장 좋았던 한 해였다. 알다시피 이곳에서 거래되는 작품들은 중저가 미술품들로 평균 단가는 약 5000파운드(약 1000만원) 정도다. 시장 침체기에는 이런 작품들을 팔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사우스 켄싱턴 지점에서는 수량을 줄이되 기획력이 돋보이는 경매들을 기획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했다. 따라서 마스터피스들만 주목받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새로운 거품에 대한 우려는 없나.
“우리는 러시아, 두바이, 중국 본토와 홍콩 시장을 개발한 이후 현재까지 이 지역들에서 5년간 수익률 면에서 고속 성장을 했다. 경매에서는 모네의 걸작을 비롯해 세잔, 워홀, 데미언 허스트 등의 가격이 안정적이었다.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현재 시장은 매우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롭게 진입하는 신진 컬렉터들의 동향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바이어들을 위해 인상파 경매의 주요 작품들을 홍콩으로 가져갔다. 러시아·아부다비 등에서도 새 컬렉터들을 만났다. 중요한 작품을 제시했기 때문에 중요한 컬렉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재 미술 시장의 양상은 가장 심각한 위기였던 90년대와 비교하면 매우 다르다. 당시 미술 시장은 차단돼 있었지만 현재는 인터넷 등의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시장이 매우 빠르게 열리고 있다. 덕분에 보다 넓은 영역에서 새로운 바이어들이 쉽게 진입하는 긍정적인 결과가 있다.”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것에 대한 본인의 관점은.
“멋진 집이나 핑크 다이아몬드처럼 퀄리티가 높고 희귀할수록 이것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가격도 올라갈 것 아닌가? 미술품도 마찬가지다. 특히 문화적 투자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자산과는 달리 미술품을 사기 시작하면서 삶에 대한 접근이나 시각 자체가 바뀐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판타스틱한 경험이다. 미술품을 수집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슬픈 일일 것이다. 미술품 컬렉팅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마치 하나의 클래식 곡이나 작곡가에게 빠져들어 가서 계속 그 음악을 듣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유시 필카넨의 앤디 워홀 경매 모습 CHRISTIE’S IMAGES LTD. 2011

-서양과 동양의 바이어 유형은 어떻게 다른가.
“서양이냐 동양이냐를 떠나 바이어 성향은 모두 제각각이다. 각각 집착하는 작가가 다르듯이 말이다. 중국 현대미술 작가를 주로 수집하던 컬렉터가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을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 현대에 와서 작가에게나 바이어에게나 국적의 개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국 바이어들은 서양 작품 중 주로 어떤 작품을 사는가.
“피카소, 모네, 워홀처럼 모두에게 익숙한 작가들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름만 보고 작품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컬렉터들이야말로 작품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고, 가장 깊은 열정과 세련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익숙한 이름의 작가들의 작품을 사는 이유는 이들이 위대한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미술계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나.
“8살 때 학교에서 렘브란트에 관한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암스테르담 미술관에 가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처음 보았던 것이 내겐 시작이었다. 미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술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계기가 있다.”

-1986년 크리스티에 입사해 25년이 됐다. 그간 본인이 느낀 가장 큰 변화는.
“한마디로 ‘국제화’다. 사실 처음 크리스티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몇 년만 머물 계획이었다. 그런데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흐의 전설적인 ‘해바라기’ 경매가 있었고 바로 직후 나는 인상파 부서로 발령받았다. 그후 12년간 세계 정상급 미술 작품에 둘러싸여 마치 미술 시장의 엔진처럼 일했다. 마치 연극의 모든 역할을 맡으면서 성장하는 배우처럼 나는 여기까지 오면서 각국의 컬렉터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처음 경매를 하던 당시엔 고갱이나 고흐의 작품을 누가 살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바이어가 미국인이 될지, 아시아인이 될지, 러시아인이 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다.”

-세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중요한 경매를 진행해오고 있다. 진행할 때 특별한 비결은.
“작품이 좋을수록, 그리고 내가 그 작품을 잘 알고 있을수록 경매는 수월해진다. 그래서 경매 전에 전문가와 출품 작품들에 대해 오랜 시간에 걸쳐 대화한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 전에 기기를 꼼꼼히 점검하듯 말이다. 그리고 경매 진행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의 출품작에 대략 60초 정도를 할애하는데 그 시간은 작품과 위탁자와 응찰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60초 동안 바이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가 승객을 배려하듯 경매장에 온 사람들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매는 단순히 예술 작품만이 아니라 하나의 이벤트를 파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흥분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경매를 진행하면서 긴장하는가.
“나는 한 번도 긴장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오히려 긴장을 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파일럿에 비교하면 비행기가 일단 뜨면 갑자기 내려갈 순 없지 않나? 비행기가 예정대로 착륙할 때까지 그 순간을 즐기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진행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 경매장에는 다수의 미술 시장 관계자와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경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한다.”

-그동안 가장 흥분되었던 순간과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해에 피카소의 청색 시대 작품인 ‘압생트 마시는 사람, 앙헬 페르난데스 데 소토의 초상화’를 팔았을 때였다(뮤지컬 작곡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 소장품으로 피카소의 절친이었던 페르난데스가 압생트 술을 마시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2010년 6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600억원에 팔렸다).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트립틱(연속으로 그려진 세 작품)이 런던 경매에서 기록을 깼을 때도 생각난다. 하지만 늘 좋은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 시장은 진지하게 나아가지만 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순간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굳게 믿음을 가졌던 수작이 유찰되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분야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사실 그런 순간이 성공을 더 달콤하게 만든다. 삶은 이렇게 대조의 연속이다. 훌륭한 경매사라면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이러한 대조의 순간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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