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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 건보 적자 1조원 시대 (하) 제자리 걸음 건보 혜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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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회사원 장모(30)씨는 지난 1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장씨가 낸 돈은 320만원. 전체 진료비 559만원의 57.2%다. 보험이 안 되는 진료비 304만원 전액과 보험이 되는 것 중 환자 부담분 16만원을 냈다. 비보험 항목 중 가장 비싼 진료는 110만원 넘는 일회용 초음파절삭기와 선택진료비(특진비, 93만원)였다. 장씨는 “초음파절삭기가 그렇게 비싸고 보험이 안 된다는 사실을 병원이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에 투자하는 돈(수입)은 2005~2010년 6년 새 65%(13조 원) 증가했다. 그 사이에 보험료가 40%가량 오른 데다 국고지원 등이 늘어났다. 그 기간 동안 약 5조원을 들여 60개 의료행위나 약 등에 새로 보험을 적용하거나 혜택 폭을 늘려왔는데도 장씨의 예에서 보듯 환자 부담이 6, 7년째 줄지 않고 있다. 특히 암 같은 중병의 환자 부담을 보험 진료비의 20%에서 5%로 떨어뜨렸지만 환자의 체감지수는 낮다. 건보 보장(혜택)률은 2004년 진료비의 61.3%에서 2008년 62.2%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건보 확대보다 비보험 진료비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비보험 진료비는 건보가 안 돼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용을 말한다. 이는 의료 이용이 늘면서 따라가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병원들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 늘릴 때가 많다. 건강보험공단 보험급여실 고영 부장은 “비보험 진료를 관리하는 데가 없다. 병원들이 가격을 자유롭게 매길 수 있어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비보험 진료의 주범은 선택진료비와 1~2인실 병실료다. 인천 계양구 장안석(32)씨의 어머니는 이달 초 종합병원에서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장씨는 “병원이 ‘수술 의사를 특진 의사로 선택하면 마취·영상판독 등도 자동적으로 선택 진료해야 한다’며 특진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장씨가 강력하게 항의해 수술만 특진을 했다. 특진을 하게 되면 일반 의사보다 20~100% 진료비를 더 낸다.

 서울 송파구 이경만(61·회사원)씨는 인근 대학병원에서 협심증 수술을 받으려 했으나 6인실이 꽉 찼다는 이유로 응급실에서 이틀, 1인실에서 하루 있다가 2인실로 갔다. 1인실은 하루에 35만원, 2인실은 20만원을 냈다. 대형병원들이 최근에 병상을 크게 늘렸는데도 보험이 되는 5~6인실을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상당수 큰 병원은 6인실에 가기 전 1~2인실에서 하루 이틀 보내야 한다. S대학병원 관계자는 “6인실로 바로 입원하는 환자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신의료기술이나 고가의 신약이 치료성과를 높이기도 하지만 환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뇌경색 환자 이모(63)씨는 지난해 6월 부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혈전(피떡) 제거 시술을 받고 290만원을 냈다. 하지만 이 진료 행위는 허용되지 않은 의술이다. 정부에 신의료 행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병원 맘대로 시술했다.

 비보험 진료의 전체 규모는 아무도 모른다. 환자의 선택권도 별로 없다. 특진이 아닌 일반의사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병원별로 비보험 진료 세부 항목과 가격을 홈페이지에 의무적으로 게시하지만 항목이 제각각인 데다 용어가 어려워 다른 병원과 비교할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선임연구위원은 “비보험 진료를 통제하지 않으면 환자 부담 경감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박유미·이주연 기자

◆비보험 진료=건강보험이 커버하지 않는 진료로 환자가 전액 부담한다. 특진비와 1~2인 병실료가 대표적이다. 로봇수술·초음파검사·고가항암제 등 검사·마취·수술·약 등 의료 전 부문에 섞여 있다. 넓게 보면 성형수술도 해당한다. 낮은 진료 수가를 벌충하는 면도 있다.

“보험 안 되는 진료, 환자에게 미리 알려야”

권용진 서울대 의료정책실 교수

서울대 의료정책실 권용진(사진) 교수는 “비보험 진료비 동의서 서식을 바꿔 시술이 필요한 정도와 가격을 함께 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보험 진료가 왜 이렇게 많은가.

 “입원비·식비·선택진료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건강보험 수가(진료행위의 가격)가 낮아서 병원의 수입 보전책으로 유지되는 것들이다. 보험을 적용해야 할 의료기술인데 재정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안정성은 입증됐지만 효과 대비 비용이 너무 비싼 것들이 있다.”

-비보험 진료가 환자에게 꼭 필요한가.

 “입원비·식비를 안 낼 수는 없다. 큰 병원의 선택진료비(특진비)도 마찬가지다. 반면 검사나 신의료기술 등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약이나 치료재료 등 보험이 안 되는 것은 병원에서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어 세트메뉴처럼 운영하기도 한다.”

-병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그런 측면이 있다. 보험이 되는 진료는 기준을 만들어 감시할 수 있지만 비보험은 감시자가 없다. 가격이 비싸고 양도 필요보다 많을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병원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통일된 아이콘으로 표시하는 등 소비자가 보기 쉽게 해야 한다. 소비자원이 가격 비교 사이트를 만들면 좋다.”

-환자가 매번 찾아볼 수는 없지 않나.

 “비보험 진료비 동의서 서식을 바꿔야 한다. 현재는 시술의 내용과 부작용만 듣는데, 동의서에 필요한 정도를 5점 척도(가장 필요~필요 없음)로 표시하고 가격도 제시해야 한다. 동의서 한 부는 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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