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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예술의 '상생'-갤러리 현대 '몸을 위한 디자인'전

중앙일보

입력

전시장을 들어서면 사방에 놓인 화장대 거울이 반사하는 빛으로 눈이 부시다.거울마다 매달린 알전구는 손가락을 대면 3단계로 밝기가 조정된다.전구가 닿는 부분은 동전만한 크기의 오목거울로 처리해 흠집이 나지 않도록 배려했다.화장대 위는 더 화려하다.서랍 뚜껑을 유리로 해 서랍에 담긴 목걸이며 반지·브로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지난 16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몸을 위한 디자인’전의 광경이다.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금속 공예 작가 3명과 가구 디자이너 1명이 연출하는 ‘가구와 공예의 만남’이다.

참여작가는 네덜란드의 오노 부크하우트(55)
,미국의 부르스 메캐프(50)
,그리고 뉴욕에 거주하는 왕기원(37)
.1층과 지하 전시장의 가구는 오준식(30)
씨가 설계했다.지금까지 금속 공예전이 많이 열렸지만 작품과 그 작품을 위해 특별히 만든 가구를 함께 전시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들의 작품은 기능성과 동시에 예술성이 강조된다.특별한 날에는 몸에 걸칠 수 있지만 평상시에는 내 집 한 구석에 장식품으로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씨는 젊은 나이에도 유럽 가구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디자이너.96년 프랑스의 주간지 레벤망 송년호가 그 해 디자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꼽았으며,그가 설계한 ‘크레데 뉘앙’이라는 호텔 로비용 소파는 세계 각국에서 팔리고 있다.3명의 작가를 두고 이번에 그가 중점을 둔 것은 ‘장신구를 걸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여성’의 이미지.그래서 화장대가 탄생했다.

화랑 1층의 화장대는 거울과 받침대의 간단한 구조.지하는 거울에 달린 서랍을 양 옆으로 밀면 상반신 거울이 전신 거울이 되게끔 만들어 눈길을 끈다.중앙에는 역시 거울이 부착된 거대한 4개의 탁자가 설치됐고 이 위에 작품을 늘어놓았다.

매케프는 독자적 장신구보다는 그림과 조각으로 배경을 만들고 그 안에 장신구를 배치하는 독특한 형태로 예술성을 과시한다.외눈박이 괴물처럼 기괴하게 생긴 작품의 주인공이 갇혀있는 감옥의 문은 관람객이 직접 열어볼 수 있게 고안이 돼 흥미를 더한다.섬세하고 세밀한 기술 위에 얹혀진 유머와 위트가 그럴 듯 하다.

영국 왕립미술학교 교수이기도 한 부크하우트는 유럽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가.철두철미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세공(細工)
이 장기다.치장이라는 장신구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로 확대되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왕씨는 뉴욕 아메리카 크래프트 뮤지엄에 작품 3점이 소장돼있을 정도로 인정받는 소장파.일상 속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장신구를 즐겨 제작한다.그녀의 목걸이 ‘집…하나의 밥공기’는 금목걸이 안에 생쌀을 담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곧 집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다.이 전시는 재불 큐레이터 도형태씨가 기획했다.30일까지.02-734-6111.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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