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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현장] 저출산 그림자 … 비어 있는 학교부지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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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다음 달 입주가 시작되는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의 신정3택지개발지구엔 시프트(장기전세주택), 국민임대, 일반분양, 특별분양 등 모두 3060세대가 들어선다. SH공사가 2007년 말 택지 개발을 시작한 신정3지구엔 고등학교 부지 1만4000㎡(약 4500평)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학교가 들어설 계획은 없다. 저출산에 따라 학생 수가 줄면서 더는 학교를 지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2007년 말부터 “주변에 고등학교가 충분하다”며 신정3지구 내 고등학교 부지를 용도 해지해 달라고 SH공사 등에 요청했다. 하지만 양천구 등이 지금까지 이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해 최근엔 부지 활용을 놓고 SH공사와 입주 예정자들이 마찰을 빚고 있다.

 땅 주인인 SH공사는 학교 부지에 아파트를 추가로 건설하자는 입장이다. 분양 수입을 올려 공사의 빚을 줄이고 주택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SH공사 김소겸 개발계획팀장은 “학교 부지에 아파트 500여 가구를 더 짓는 방안에 대해 양천구 등과 협의를 하고 있다”며 “큰돈 들여 개발한 땅을 놀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주를 앞둔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서주연(40·여) 입주예정자 대표는 “분양 신청을 할 때만 해도 고등학교가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학교를 못 짓는다면 학생을 위한 청소년수련관이나 도서관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천구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리 확보한 학교 부지가 필요 없다는 요청이 들어오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구로구 천왕2택지개발지구 등 4곳도 비슷한 상황이다. 모두 출산율 감소가 낳은 현상이다. 천왕2지구(공사 중)의 경우 시프트(장기전세주택) 등 1500여 세대가 들어선다. SH공사는 2006년 용지 활용 계획을 세우면서 시·구·교육청 등과 협의해 입주민 자녀를 위해 초등학교 부지 8800㎡를 확보해 놓았다. 그러나 남부교육지원청은 관내 초등학교 64곳의 전체 학생 수가 매년 3000~4000명 줄어들자 2009년 9월 “신설 학교가 필요하지 않다”며 용도 해지를 요청했다.

문제는 이들 부지도 새로운 땅 활용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입주민들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땅 주인인 SH공사가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을 지으려고 할 경우 이 땅을 학교 부지로 알고 입주한 주민들은 이를 약속 위반으로 볼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 도시개혁센터 김한기 국장은 “택지지구에서 학교 부지를 없앨 경우 아파트를 분양하기 전에 이를 결정해야 한다”며 “분양이나 입주가 시작된 택지지구에서 용도 해지된 학교 부지는 주민과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택지개발지구=아파트 등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조성하는 공공택지를 말한다. 일반인들이 주택을 짓는 민간택지와는 달리 공공주택을 개발하기 때문에 토지주택공사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사업시행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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