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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스토리 7 탄생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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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인 아들녀석이 며칠 전 뜬금없이 “내 탄생석은 뭐야?”라고 물었다. 어디서 탄생석 이야기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너는 6월생이니까, 그래 진주가 탄생석이구나.” 그러자 실망한 듯한 아이의 대답이 의외였다.

 “진주? 남자가 진주를 할 순 없잖아. 나한테 어울리는 걸 해야지.” 아들의 말은 주얼리 디자이너인 내게도 신선했다. 탄생석에 만족하는 이도 있겠지만 아들처럼 불만인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기 때문이다.

 탄생석이란 말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1912년 보석소매상 조합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계절 감각과 상징적 의미를 고려해 임의로 정한 데서 유래됐다. 20세기 초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띠자 수십 년간 불황을 겪던 보석상들이 보석의 수요를 늘리려고 임의로 만든 것이다.

 1937년에는 영국의 귀금속 조합도 탄생석을 발표했다. 미국의 것과는 8월 탄생석 내용이 달랐다. 미국은 연녹색의 페리도트, 영국은 붉은 마노석(감람석이라고도 한다)을 내세웠다. 어쨌든 이러한 경향이 유럽 각지로 퍼지며 나라마다 자국의 보석 수요와 공급을 바탕으로 탄생석을 발표했다. 국내에는 1980년대쯤 국내 귀금속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탄생석은 미국이 발표한 것을 따른다.

 탄생석에는 상업적인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인류 초기에는 마귀를 쫓는 호신부(몸 보호를 위해 지니는 부적)나 신이 내린 절대적인 신표로 귀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졌다. 몸에 지니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정도의 의미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운명적이고 로맨틱하게까지 느껴지는 ‘탄생석’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이다.

 탄생석에 대한 기억은 내게도 그다지 좋지 않다. 한창 멋 부리던 시절, 내 탄생석을 촌스럽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난 건 주얼리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부터다. 전 세계에는 12개 탄생석뿐 아니라 내가 보지 못했던 수백여 가지의 보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떤 보석은 탄생석들보다 더 값졌고, 어떤 것은 내 탄생석보다 내게 더욱 잘 어울렸다. 보석을 많이 보고 착용하다보니 보석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탄생석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보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보석의 색깔로 자신에게 어울리는지를 알아본다. 피부톤이 밝은 사람은 채도가 높거나 선명한 색상의 보석이 잘 어울린다. 흑진주나 루비(7월) 또는 에메랄드(5월)처럼 원색 계열의 보석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피부톤이 어두운 사람은 채도가 너무 높은 색보다 파스텔 계열이 어울린다. 예를 들어 연녹색의 투명한 보석인 페리도트(8월), 우유빛이나 연갈색·연보라를 띠는 연수정도 좋다.

 연령대에 따라 어울리는 보석도 다르다. 오팔(10월)이나 터키석(12월), 그리고 에메랄드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보석이다. 따라서 보석에 대해 경험이 많은 40~60대에게 어울린다. 오팔은 건조한 곳에 보관할 경우 표면이 갈라질 수 있다. 에메랄드는 경도가 우수하지 못해 잘못 관리하면 금이 갈 수 있다. 오팔은 표면을 깨끗한 천으로 자주 닦아주고 환경이 건조할 경우 냉장고에 몇 시간 정도 넣어둬도 효과가 있다. 에메랄드는 떨어뜨리거나 충격을 가하면 깨질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보석이 존재한다. 그중 내게 맞는 보석을 알아두는 것은 어떨까. 내게 가장 어울리는 보석이야말로 진정한 나만의 탄생석이 아닌가 싶다.

주얼리 디자이너 한영진=주얼리 브랜드 오르시아의 대표로, 2007년 국제 귀금속 장신구대전에서 수상했다. 2008년 뉴욕 국제 주얼리 박람회 자문위원을 맡았고, 같은 해 지식경제부 주최 주얼리 디자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9년 드라마 ‘천추태후’의 봉관 제작기술을 자문했으며 여러차례 TV 드라마와 영화 제작·협찬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제 21회 전국귀금속 디자인 공모전 특별상을 받았다.

[사진설명] 청록색이 눈부신, 5월의 탄생석 에메랄드로 만든 반지.

<주얼리 디자이너 한영진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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