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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일본 구해줘” 아내의 문자 … 하이퍼 레스큐 “가족에게 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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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 자위대 소속 고성능 소방차가 18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 물을 뿌리고 있는 장면. 자위대와 도쿄소방청 소속 ‘하이퍼 레스큐’는 19일에 이어 20일에도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과열된 원자로 내부를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채워 넣었다. [후쿠시마 AFP=연합뉴스]

19일 도쿄소방청 소방구조 기동부대 ‘하이퍼 레스큐’ 대원 일부가 후쿠시마 원전 살수 작업을 마치고 도쿄로 복귀했다. 오른쪽부터 다카야마 유키오 제8방면대 총괄대장, 사토 야스오 총대장, 도미오카 도요히코 제6방면대 총괄대장. [도쿄 AP=연합뉴스]

“대원들은 모두 열심히 일해줬다. (집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 발전소 3호기에서 10여 시간의 살수 작업을 벌인 도쿄소방청 파견대의 사토 야스오(佐藤康雄·58) 총대장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작업을 마친 사토 총대장은 19일 밤 1진과 함께 복귀해 도쿄 소방청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뭐가 가장 힘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원들의 사기는 매우 높았다”고 말을 꺼내다 고개를 숙이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약 10초 뒤 고개를 든 사토는 이렇게 가족에게 사과하곤 입술을 깨물었다.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소방구조 기동부대 ‘하이퍼 레스큐’의 도미오카 도요히코(<51A8>岡豊彦·47) 제6방면대 총괄대장, 다카야마 유키오(高山幸夫·54) 제8방면대 총괄대장이 함께 회견에 나왔다.

 이들은 작전지역으로 떠나기 직전 가족들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다카야마 대장은 부인에게 “안심하고 기다려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부인은 곧바로 “믿고 기다리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고 했다. 사토 총대장도 부인에게서 “일본의 구세주가 되어달라”는 짧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다카야마 대장은 “집에 돌아가면 가족과 술 한잔하면서 반성회를 열고 싶다”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목숨을 걸고 작업했던 이들에겐 가족이 최고의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임무를 끝낸 소방대원들은 자신들이 원전 현장에서 느꼈던 방사선 피폭 공포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애초 소방차를 타고 바닷물을 뽑아 올릴 호스를 바닷가로 끌고 갈 예정이었다. 설치 시간도 8분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바닷가는 폭발한 원자로 건물 파편투성이여서 이동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갈 수 있는 곳까지만 호스를 끌고 간 뒤, 해변까지 약 350m를 남기고 소방차를 멈췄다. 그러곤 소방차에서 내려 50m짜리 호스를 로프를 이용해 손으로 끌고 갔다. 바닷물을 1분당 3.8t씩 보낼 수 있는 호스는 두꺼웠으며 무게는 100㎏이나 됐다. 이를 네 명이 힘을 합쳐 끌고 간 것이다. 대원들이 전원 피폭될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또 다른 대원들은 살수용 굴절살수탑차를 3호기 벽 2m 앞에 설치했다. 이는 소방대원들이 방사능이 배출되는 폐연료용 냉각 수조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는 뜻이다. 다카야마 대장은 “피폭 위험을 감수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활동을 끝내는 게 쉽지 않았다. 온 동료가 힘을 모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사토 총대장은 “ 대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노고를 치하했다. 이들의 노력 덕분인지 시간당 60마이크로시버트였던 현장의 방사능 수치는 살수 작업 뒤 일시적으로 떨어졌다. 사토 총대장은 “(뿌린 물이 냉각 수조에) 명중했다고 확신했다”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잠들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하이퍼 레스큐=1995년 고베 대지진 영향으로 이듬해 창설된 도쿄소방청의 ‘소방구조 기동부대’. 대규모 재해 등에서 구조·진화·구급작업을 동시에 실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도쿄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 걸쳐 활동한다. 2008년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과 2009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구조작업에 참여했다. 핵·생물·화학 재해에도 투입될 수 있도록 방사능 방호복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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