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80여 명의 사투, 인류의 이름으로 응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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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류가 원자로와 벌이는 사실상 최초의 사투(死鬪)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 최악의 사고는 1986년 소련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것이다. 방사능 피폭으로 수년간 9300여 명이 사망하고 43만여 명이 암과 기형아 출산 등 후유증을 앓았다. 사고등급도 최악(7등급)이다. 그러나 후쿠시마에 비교할 때 체르노빌은 사투랄 것도 없이, 손쓸 틈 없이 그저 당한 것이다. 수차례 폭발로 원자로는 터져버렸고 소련 당국은 콘크리트를 퍼부어 원자로 무덤을 만들어야 했다. 공산체제의 폐쇄성 때문에 세계인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도 없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단발성으로 방사능이 외부로 누출된 것이었다. 주민 20만 명이 일시적으로 피난하고 원전은 폐쇄되었지만 역시 사투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사고등급도 5 등급이었다.

 후쿠시마는 모든 면에서 다른 새로운 종류의 사고다. 거의 생중계되는 사고와 조치 광경을 세계인은 영화처럼 보고 있다. 4개의 원자로에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불꽃과 연기가 피어 오른다. 헬기는 바닷물을 퍼날라 붓는다. 인류는 핵과 인간의 전쟁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 사상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경험한 나라가 또다시 이런 핵 사고를 겪게 되니 비극적이고 안타깝다.

 지금 일본은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180여 명의 현장인력이 방사능의 정글 속에서 원자로를 냉각시키려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둔 59세의 지방 원전 직원이 자원했다. 협력업체도 직원 3명을 작업에 합류시켰다. 이들 180여 명에게 인류의 이름으로 응원을 보낸다.

 핵 문제는 전 인류의 것이다. 지난해 1월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432기나 된다. 방사능 낙진의 유동성 때문에 원전 사고는 국경을 쉽게 넘는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는 핵 연료봉을 냉각수에 담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상황을 안정시키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프랑스·한국 등 원전 선진국은 도울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강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