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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남과의 사랑'도 그저 '사랑'일 뿐

중앙일보

입력

때가 때이니 만큼, 아니 나이가 나이니 만큼(?) 요즘에는 결혼한다는 주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결혼소식과 함께 '결혼할 남자가 연하'라거나 '신부가 몇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그때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뭐 얘깃거리라도 되나" 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이휘재 남희석이 진행하는 〈멋진 만남〉을 보면서는 새삼스럽게 '연상녀 연하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멋진 만남〉의 '청춘의 찜'이란 코너에서 스물다섯살의 여성출연자가 스무살의 한 남자를 '찜'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의 찜'이란 코너는 짝사랑에 빠져 있는 여성들이 자신이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남성에게 프로포즈를 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기회를 주는 프로이다. 방송의 힘을 빌려 자신의 사랑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는 출연자들도 있었지만 반면 자신의 프로포즈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울먹이며 돌아서는 출연자들도 있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닌군, 싶어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보다 보니 여성들이 자신의 사랑을 만인 앞에서 당당히 표현하는 모습들이 갈수록 보기좋았다. 워낙 이와 비슷한 프로들이 많아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항상 사랑 앞에서는 수동적이고 다소곳한 여성들만 그려내던 TV가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요즘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인 듯했다.

이번에 나온 출연자는 후배들에게 미팅을 주선해주려다 약속이 어긋나는 바람에 자신이 대신 나가 다섯살 연하의 남자를 좋아하게 돼버린 경우였다. 처음에는 고작해봐야 한두살 차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여성출연자가 다섯살이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코너는, 스무살의 찜당한 남자가 스물다섯의 찜한 여자(그 프로에서는 여성출연자를 '용기녀'라고 부르곤 하는데)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해피엔드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무튼 요즘 부쩍 연하남과 연상녀 커플이 자주 등장한다. 만화에서는 이미 해묵은 소재가 돼버렸고 영화, 드라마 등등에서도 이젠 자연스러워보인다. 한동안 드라마 〈거짓말〉이 연상의 여인과 연하의 남자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며 골수팬들을 확보하기도 했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연하남 추세가 요즘의 최대 유행이라는 말도 있고 세기말에 나타나는 징후 중 하나라고 근거없는 분석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그런 생각 자체가 오히려 촌스럽고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명제는 이미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정도로 진부하지만 사실 이제서야 이 명제처럼 사랑이 제대로 그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 나이와 조건에 얽매여 사랑을 바라볼 때, 연하남은 굉장히 어색할 수 있지만 그것을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좀더 마음을 열고 본다면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연하남'이니 '연상녀'니 하며 그것을 세기말적 유행의 하나쯤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맘에 여유를 갖는 것이 오히려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걸맞은 사랑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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