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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시민은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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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대석
사회부문 차장

직장인 김홍일(47·전북 김제시 금산면)씨에게 지난겨울은 참혹했다. 그는 3년 전 전주 시내 아파트를 팔고 고향 마을로 돌아갔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큰 불편 없이 전원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주 시내버스를 이용해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회사에 다녔다. 시내버스는 10~20분마다 한 대꼴로 운행됐다. 금산면에 전주 시내버스가 왔기 때문에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데 15분이면 족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둘째 주부터 사정이 돌변했다. 갑자기 시내버스가 끊겼다. 출근하려면 김제 시내버스를 타고 원평읍까지 나가야만 했다. 전주 시내 초입인 효자동까지는 직행버스를 탔다. 효자동에서 회사까지는 다시 택시를 탔다. 출근 시간은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요금도 종전의 1500원에서 네 배로 늘었다. 김씨는 “추운 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택시를 탄 적도 많고 심지어 찜질방에서 자고 출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17일로 100일째를 맞는 시내버스 파업을 보는 전주 시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지난해 12월 8일 시작된 노사 간 힘겨루기가 여전히 평행선이다.

 이 파업은 7월로 예정된 복수노조 시대를 앞둔 전초전이다. 복수노조 시대가 열리면 ‘1사업장 1노조’ 제한이 풀린다. 하지만 사용자 측과의 교섭 창구는 단일화해야 하기 때문에 세력이 큰 노조가 대표성을 갖게 된다. 민주노총 운수산업 노조원들은 ‘밀린 임금 지급, 근로시간 조정’ 등을 내걸고 있지만 속내는 한국노총을 몰아내고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반면 회사 측은 “지난해 8월 이미 한국노총 계열의 조합과 단체협약을 맺었다”며 협상 제의를 일축했다. 민주노총을 인정하면 한국노총 계열의 노조가 와해돼 향후 노사관계가 더 험난해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양측은 지금껏 정식 협상을 한 차례도 안 했다.

 양측의 이런 힘겨루기 탓에 65만 전주 시민이 볼모 신세다. 변두리에 사는 서민이나 인근 김제·완주 지역 주민들은 병원에 가는 것마저 힘겨울 정도다. 감정싸움은 극에 달했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투성이다. 외부 세력도 끼어들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전주 시민은 그래서 불안하다. 겁도 난다. 이미 버스 테러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달리는 버스에 난데없이 돌멩이가 날아들어 유리창이 깨지고, 차고지에서 불이 나 버스가 타기도 했다.

 전주 시내버스 파업은 협상의 법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협상은 파국을 막기 위한 것이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게 첫걸음이다. 밀고 당기다 보면 한발씩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도 있는 법이다. 상대방이 무리하고 황당한 요구를 한다면 시민에게 공개하면 된다. 시민은 누구의 말이 옳은지 엄정한 심판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시민의 마음을 얻는 게 결국 승리하는 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장대석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