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자폐증 아들 손 잡고 부산 → 서울 40일 걷기여행 나선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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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섭(오른쪽)씨가 발달 장애인인 아들 균도 군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다. [송봉근 기자]

“난 할 수 있다. 균도는 할 수 있다….”

 16일 경남 양산과 밀양을 잇는 1022번 지방도. 차들이 쏜살같이 달리는 도로 변을 중얼거리면서 걷는 부자(父子)가 있다. 아버지가 한 말을 아들은 따라한다. 부산 ~서울 600㎞를 39박 40일 동안 걷기여행에 나선 이진섭(47·부산 기장 사회복지생활상담소장)씨와 아들인 균도(19)군이다. 균도는 자폐성 1급 발달장애인으로 지능이 서너 살 어린이 수준이다. 이들 부자는 12일 부산시청을 출발, 다음달 20일 서울 국회의사당에 도착해 세계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에 약 15㎞씩 걷고 있다.

 몸무게 100㎏, 키 180㎝ 거구를 가진 자폐증 아들의 과잉행동이 나오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갑자기 도로 가운데로 뛰어들거나 도로 옆 야산으로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차들이 많이 다니는 구간에서는 아들을 노끈으로 묶은 뒤 허리춤을 꽉 잡고 걷는다.

 부자가 노끈으로 묶은 채 걸어가는 모습을 이상하게 본 차량 운전자들이 차를 세우고 다가오기도 한다. 운전자들은 부자가 입은 티셔츠에 적힌 ‘발달장애 부자의 세상걷기’라는 글귀를 보고는 그냥 돌아간다.

 그가 걷기 여행에 나선 목적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장애인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에서 아버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장애 자녀 돌보기를 어머니들이 주로 맡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그의 가정에서는 부부의 역할을 바꾸었다. 부인 박금선(45)씨가 작은 커피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진다. 그는 10여 년 전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 뒷바라지만 해왔다. 그동안 많은 발달장애인의 복지문제를 부모들만 떠안고 살아가느라 가족 해체의 위협에 시달리는 많은 위기 가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장애인 복지문제에 제대로 접근하려고 부산가톨릭대학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 지난달 졸업한 뒤 상담소를 차렸다. 찾아오는 장애아동의 부모들에게 재활치료·돌봄·의료비·활동보조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받는 방법을 안내해 주고 있다.

 그는 도보여행을 하면서 지난해 11월 국회의원 121명이 발의한 ‘장애아동 복지지원법’ 통과를 호소하고 가칭 ‘발달장애인 법’ 제정도 세상에 알리고 싶어한다.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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