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연료봉도 노출 … 원전, 통제불능 치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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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인공위성이 촬영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 앞쪽 긴 건물 뒤쪽에 원자로 1~4호기가 보인다. 1호기는 수소 폭발로 손상돼 한쪽 벽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2호기는 원자로 노심이 녹아 내리고 격납용기마저 손상된 상태다. 폭발 당시 벽면에 뚫린 구멍을 통해 흰 수증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3호기 역시 수소 폭발로 건물 윗부분이 날아갔다. 방재작업반이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뿌린 바닷물 등이 수증기가 돼 하늘로 치솟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4호기는 건물 전체가 심하게 훼손됐다. [로이터=연합뉴스]<사진크게보기>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6일 에다노 유키오(技野幸男) 관방장관은 “3호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흰 연기가 관측됐으며, 4호기에서는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또다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4호기의 화재는 수조에 보관돼 있는 수백의 사용후 핵연료의 열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냉각수 공급이 끊겨 이곳에선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열이 발생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를 냉각시키지 못하면 화재가 발생하고 그 여파로 사용후 핵연료가 녹으면 방사능 물질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최익재 기자

간 “동일본 박살날 수도” WSJ “타월 던지는 일만 남아”

자위대 투입 … 경찰은 물대포 동원
핵재앙 막을 최후 카드 없어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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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에서 발생한 핵연료 누출 사고 단계를 넘어 원자로 폭발로 1만 명가량의 사망자를 낸 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전 단계에까지 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핵재앙을 막을 ‘최후 카드’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핵엔지니어 데이비드 로크바움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타월을 던지는 것(포기)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원전을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자 일본 경찰은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를 냉각시키기 위해 물대포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NHK방송이 전했다.

일본 자위대도 사고 원전 처리를 위해 전면에 재등장했다. 도쿄신문은 방위성이 방사능 물질을 차단하는 특수장비를 갖춘 중앙특수무기방호대 150명과 화학방호대 50명 등 자위대원 200명을 후쿠시마 제1·2원전 주변에 배치했다고 전했다.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방위상은 16일 예비 자위대 창설 이래 첫 소집 명령을 내렸다. 자위대에서 퇴역해 민간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3만7600명에 이른다. 자위대 10만 명을 투입해도 일손이 부족하자 사실상 민간인에게 동원령이 내려진 것이다.

 원전 운영업체인 도쿄전력은 제1원전 1·2호기 핵연료가 각각 70%와 30% 정도 손상됐다고 밝혔다. 냉각수 부족으로 연료봉이 장시간 노출돼 연료봉을 덮고 있는 금속 피복재에 작은 구멍이나 균열이 생겨 강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됐다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이날 새로운 고압 송전선을 설치해 외부에서 후쿠시마 원전에 전원 공급을 시도하고 있다. 또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비상노심냉각장치(ECCS) 복구에도 나섰다.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고 있는 제1원전 5·6호기에는 냉각수를 투입했다.

 간 나오토(管直人) 총리는 이날 밤 관저에서 사사모리 기요시(笹森淸) 내각 특별고문과 만나 “정말 최악의 사태가 되면 동일본이 박살난다는 것도 상정해야 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도쿄전력은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일본에서는 천황)은 이날 지진 발생 이후 첫 TV 생방송에 출연해 “현재 원전의 상황이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상 최대의 강진과 쓰나미 피해를 본 일본 국민의 안전을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희생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국내외 구조팀에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일왕이 자연재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전한 건 극히 이례적이다.

김동호·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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