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의 단정한 풍광 … 일본의 그 절도 있는 얼굴들 … 절망을 희망으로 피워내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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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대지진으로 일본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탁월한 언어 감수성과 직관으로 역사와 현실, 인간을 노래해 온 고은 시인이 일본인에게 전하는 위로의 편지를 본지에 보내왔다.

고은

타인의 고통은 풍경이 아니다. 나흘째, 닷새째 실시간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서재의 일손도 탁 놓아 버렸다. 소주잔도 실없어서 맹물만 마신다. 내 일인 듯 속이 탄다.

 아이티가, 뉴질랜드가 엊그제인데 이웃집 일본의 저 극한의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경악하고 연민한다.

 일본의 단정한 풍광이 떠오른다. 일본 친지들의 그 절도 있는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간토(關東) 대지진(1923년), 고베(神戶) 대지진(95년)도 거슬러 떠오른다. 그 끄트머리에 재앙의 한 현장인 센다이(仙臺) 일대도 떠오른다. 몇 해 전 한·일 문화교류의 한 현지시찰 계획에 따라 그곳의 여기저기에 머문 적이 있다. 결코 과장 없는 그곳 항구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정숙한 공원 안쪽 중국 작가 루쉰(魯迅·노신)의 동상도 루쉰의 유학 시절과 함께 생각난다.

 당장 도호쿠(東北) 대학 교수들의 안위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사로운 내 감상을 넘어 지금 일본 전체가 감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어쩌면 이 고통은 인류의 한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친구야, 무사했구나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았던 이와테현 미야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15일 지진 발생 닷새 만에 친구를 만난 한 어린이가 웃으며 달려가고 있다. [미야코 AP=연합뉴스]

 지구라는 행성은 인류 생존의 절대공간이다. 지구를 어머니로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 자체도 하나의 우주적 생명체라면 지진이라는 활동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당연한 현실 위에 인류의 장소로 삼은 것이 인류의 숙명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장소에 자신의 삶과 문명을 영위하는 인류의 오늘에도, 몇천 년 전부터 있어 온 지구 판(板) 구조의 단층과 단층이 어깃장 놓는 일에는 불가역(不可逆)이다.

 인간에게 지구의 지상만큼 의지할 곳이 어디 있겠는가. 지구의 생명체가 그 단세포 시기의 바다에서 뭍으로 기어오른 이래 온갖 지상의 생물이 명멸하는 지구사(地球史)야말로 지상에서의 절대조건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겠는가. 인류는 이런 근원으로서의 불안 위에 혈거(穴居)시대 이래의 문명을 이뤄 왔다.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자신의 문명을 이뤄 왔다고 아무리 강변해도 끝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연은 아기를 품고 보는 어머니처럼 인간을 애지중지 보호하지는 않는다. 어머니이되 실로 가공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흔히 사람들의 입이 함부로 자연귀의를 말하지만 자연의 폭력 및 야만은 인간의 그것을 초월한다. 천지가 불인(不仁)이라는 옛말은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고래로부터 지진의 영역 안에서 어쩌면 지진을 자신의 역사 토대로 삼고 있는지 모른다. 지구 자체가 하루에 7000개 안팎의 크고 작은 지진을 반복하고 있는 가운데서 특히 일본의 지진 체험은 거의 주기적이기까지 하다. 일본의 지진과 태풍이야말로 일본의 미덕인 인내와 결속의 가치를 삶의 유산으로 삼고 있으리라.

 이번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현대사에서 패전 이후 최악의 것일 터다. 하지만 반드시 이것을 하나의 원점으로 삼아 새로운 일본이 실현될 것으로 나는 믿는다. 몇만에 이를 고인들의 희생에 명복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오늘을 찬탄한다.

◆고은(高銀)=1933년 전북 군산 출생. 승려가 됐다가 환속했다. 58년 청록파 조지훈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30권 연작시집 『만인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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