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9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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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대화 1

이것은 말굽과 나의 대화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기록이다. 때는 그해 3월 24일. 화요일. 새벽 1시부터 5시 사이. 장소는 샹그리라 201호실과 관음봉 일대. 괄호 < > 안은 읽는 이가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내가 설명을 보탠 것이다.

<말굽은 피곤한 듯 충혈된 채 도드라져 있다. 샹그리라 관리실을 겸한 나의 살림방. 201호실이다. 불을 켜지 않았으나 출입구 외등 불빛이 창의 한 켠으로 흘러들어 아주 어둡지는 않다. 밝은 윗목에 내가, 더 어스레한 아랫목에 말굽이 누워>

나: 전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어. 왜 하필…… 나야?
말굽: <심드렁한 어조로> 나는 자네가 왜 하필 나를 불렀느냐고 묻고 싶은데.
나: 말도 안 돼. 나는 너를 초대한 적이 없어. 애당초 내 손바닥에 집을 지은 것은 너이고, 거기서 살고 있는 것도 너야. 네 집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또 뻔뻔해지고 있어. 내가 아는 건 그뿐이야. 왜 하필 손바닥이야? 그것도 왜 하필 내 손바닥?
말굽: <낄낄거리며> 손바닥이라 불만인가. 그럼 맹장이나 심장에 들어가 살아야겠어? 만약 당신의 심장이나 머릿속에 들어가 내가 집을 지었어봐. 당신, 반년도 못 살고 황천길 떠나. 고백하자면, 난 원래 발에 빌붙어 살았었어. 고린내 나는. 아우, 지겨워, 그 발 냄새. <과장되게 진저리를 쳐 보이고> 손바닥으로 간 건 글쎄 뭐랄까, 나의 환경을 좀 업그레이드한 거지.
나: <벌떡 일어나 앉아 말굽을 노려보며> 어떤 자식의 발바닥이었는데?
말굽: 말도 말아. 군바리였거든. 그것도 특수부대.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워커라는 감옥 속에 있어봐. 그 냄새를 직격탄으로 맞으면 날아가던 메뚜기도 기절해 추락사할 정도였네. 자네도 알 만한 사람이었어.
나: 운악산…… 그 부대?

말굽: 응. 기억하는군. 그 부대는 정말 특수한 특수부대였지.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주로 북파공작원들을 훈련시키는 부대였네. 걔들 중에는 사회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도 많았었어. 심지어 사형언도를 받은 친구도 있었지. 훈련은 정말 혹독했네. 혹서나 혹한에서, 먹을 것 하나 주지 않고, 그것도 남에게 들키지 않게 천리 행군 하는 것 정도는 기본에 불과했지. 그들의 훈련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부분 초점을 맞췄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모든 도구에 대해 지겨울 만큼 학습했고 사람을 죽이는 모든 방법을 반복적으로 배우고 익혔지. 훈련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훈련병들 자신이 기계나 짐승이 되도록 해야 했거든. 그들은 설령 나중에 군대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습관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완벽하게 재조립됐네. 훈련의 최종목표도 그것이었어. 그들을 완전히 기계나 짐승으로 만드는 것. 그걸 위해 모든 교관에게 부여된 훈련방법은 모멸과 구타가 기본이었네. 잘해도 맞고 못해도 맞아. 엎드려서도 맞고 누워서도 맞고 기어 다니면서도 맞지. 짐승으로 만들기 위한 모든 방법이 동원됐네.

분뇨가 가득 찬 통속에서 스물네 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거나 철조망을 몸에 감고 기어가야 하는 기합도 있었고, 실제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머리 위에 쳐들고 뙤약볕 아래에서 한나절 이상을 견뎌내야 하는 벌도 있었어. 교관들은 훈련병을 일관되게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명령받고 있었어. 그렇게 해야 그들이 가진 인간성이 완전히 뿌리 뽑히니까. 훈련 중에 죽는 애들도 꽤 있었지. 교관에게 맞아 죽는 애들. 그래도 외부나 군의 상층부에선 진실을 알지 못했어. 알았어도 모르는 척하고 싶었겠지만. 부대장은 특별하고 경이로운 존재였네. 다른 누구도 그 부대장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군의 상층부에서도 알고 있었어. 약간의 문제가 생길 수 있을 테지만, 그가 아니면 그 부대를 유지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부대 안에서의 모든 일은 철저히 은폐되고 조작됐네. 말하자면, 그 부대는 세상 밖의,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유령 같은 집단이었어. 괴물, 또는 뱀파이어 집단이랄까. 어떤 공식기록에도 그들의 부대는 기록되지 않았고, 당연히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지. 부대장이 법이고 왕이고 수령이었어. 이런 훈련까지 있었다네.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훈련 말야.

그것도 도심에서. 그래. 역시 자네조차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군. 돌이켜보게. 한때 이 도시에선 살인사건이 빈발했었어. 칼부림이 나서 사람이 죽었다거나, 깡패들 싸움 끝에 살인이 벌어졌다거나, 그게 아니면 희대의 변태적 살인마에 의한 영구 미제 살인사건으로 기록되고 만 사건들. 그중의 상당수는, 놀라지 말게, 그 특수부대 훈련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야. 부대장이 은밀히 고안해낸 훈련방법이었지. 도심으로 들어가 사람을 하나 죽인 다음 붙잡히지 않고 돌아오라는 특명이었어. 잔인하게 죽일수록 평가가 좋았지. 사지를 절단하거나 여자의 음부 또는 젖가슴을 도려내는 엽기적인 사건도 있었어. 신문은 희대의 연쇄살인이라고 떠들어댔지. 붙잡히면 자살하거나, 조를 이룬 다른 부대원들이 동료를 죽이고 오도록 설계돼 있었네. 부대장은 그걸 ‘컨설팅한다’고 했어.

그것을 컨설팅한 부대장은 지금 경찰조직의 힘 있는 자문위원이라네. 놀랍지 않나. 말인즉 훈련이었지만, 아니야. 부대장이 가진 살인욕구를 채우기 위한 보상심리로 생긴 훈련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부대장은 훈련을 빙자해 폭력과 살인의 잠재적인 욕망을 쫓아갔어. 그는 폭력의 신봉자이자 중독자였고, 폭력의 끝에, 가장 가열찬 오르가슴을 가져오는 살인이라는 클라이맥스가 있다고 생각했어. 지금의 자네처럼. 그에겐 조국이라는 우산과 명분이 있었어. 조국이 부른다, 라고 말하면 모두 감동해 울 정도로 훈련병들을 세뇌했지. 하나를 죽이는 극한의 훈련으로 오천만 민족을 살릴 수 있다는 식의 논리. 반복되는 폭력으로 모든 사고와 감각이 마비된 훈련병들과 휘하 장교들은, 그래서 그 엉터리 논리에, 일말의 의문도 가지지 않았네. 이미 뼛속까지 세뇌되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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