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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길자연 목사의 우상숭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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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땅과 바다만 갈라지고 일어서는 게 아닐 것이다.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특히 종교의 땅은 갈등의 쓰나미에 취약하다. 다른 종교를 헛되이 부정(否定)하면 인간사회는 갈라지고 터진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싸움에서 인류는 종교적 재앙을 겪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지난 3일 국가조찬기도회의 특별기도는 매우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대통령 무릎’ 사건만 알려졌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의 특별기도였다. 동영상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길 회장은 한민족 반만년을 우상숭배의 역사로 규정했다. 그는 “지나간 반만년 동안 우상숭배의 죄 속에 있었으나 하나님이 주권적 역사를 통해 구원해 주셨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 나라 우상숭배의 죄를 고백합니다”라고 했고 “반만년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라고도 했다. 세 번이나 ‘우상숭배의 죄’를 주장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우상숭배는 다른 종교를 가리키는 게 분명하다.

 한기총은 66개 교단과 19개 단체가 모인 한국 개신교의 뼈대이자 몸통이다. 길자연 목사는 대표적인 개신교 지도자다. 한기총 대표회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이 세 번째다. 그런 최고위급 개신교 지도자가 국민과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반만년 역사를 ‘우상숭배의 죄’라고 지칭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국사를 비롯해 사찰을 즐겨 찾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불사(佛事)에 거액을 기부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 사찰을 방문했다. 그들 모두 ‘우상(偶像)의 땅’에 간 것인가.

 서울대 종교학과 윤원철 교수에 따르면 불교는 한민족의 문명 개안(開眼)에 크게 기여했다. 4세기 무렵까지 고구려·백제·신라는 사실상 부족공동체 수준이었다. 이미 기원전에 유럽·중국에선 찬란한 고전 왕국문명이 발흥했는데 한반도는 뒤처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4세기 말 중국을 통해 불교의 경전과 문헌이 들어왔다. 부족국가들은 고급 불교문화를 통해 포괄적인 세계관을 갖출 수 있었다. 이후 삼국은 왕국다운 왕국으로 발전했고 불교문화는 통일신라와 고려로 이어졌다. 조선시대 불교는 유교에 밀렸지만 왜란의 승병(僧兵) 같은 호국불교로 나라에 이바지했다.

 유교도 한민족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시대 유교는 국가통치 사상이었고 백성에게는 생활의 질서였다. 계급적 세계관의 한계도 있었지만 경제·과학이 미숙했던 농업국가에서 유교는 나름대로 유용한 정신적 틀이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앞세우는 유교적 가치 덕분에 1960~80년대 한국은 국력을 국가의 경제성장에 모을 수 있었다. 국가와 사회를 중시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표적인 유교적 인간이었다.

 기독교는 19세기 말 개화기(開化期)에 들어와 국가의 근대화·현대화에 핵심적인 업적을 남겼다. 선교사들은 특히 의료와 교육에서 한국을 서양문명의 세계로 이끌었다. 개신교 장로였던 이승만은 일찍부터 미국의 기독교 현대문명에 눈을 떴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들여왔고 한국전쟁 후에는 한·미 동맹으로 미국을 이 땅에 묶어두었다. 인권과 민주를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 정신은 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한국의 종교·정신문화는 불교·유교·기독교라는 삼각대 위에 있다. 세 다리 중에서 무엇이 우상이고 무엇이 숭배인가. 진짜 우상은 길 회장의 마음속에 있는 ‘잘못된 역사 인식’이다. 고급 수준의 기독교 신학은 우상숭배를 물체에 절을 하는 표피적 개념이 아니라 ‘진실 아닌 것을 진실로 고집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이번 국가기도회의 주제성구(聖句)는 “강하고 담대하라”였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했다는 구절이다. 길 회장이 진실로 강하고 담대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남한의 불교와 유교인가 아니면 북한에서 벌어지는 우상숭배인가. 다른 이의 다른 종교인가 아니면 자기 마음속에 있는 왜곡이라는 우상인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