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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전 개발 ‘프리미어 리그’ 진출 … 석유 자주개발률 15%로 끌어 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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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오랫동안 중동의 모래벽은 높았다. 석유를 생명줄처럼 관리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중동 국가들은 자국 유전을 장악한 석유 메이저들을 쫓아내고 국유화했다. 외국 회사에 개발권을 넘겨주는 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최근 전쟁을 치른 이라크가 전부다. 그나마 이런 곳들도 대부분 엑손모빌이나 BP·토탈·셸 같은 석유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다. 73년 일본이 개발권을 얻은 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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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년 만에 그 문이 열렸다. UAE에서 대형 유전의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현재 생산 중인 10억 배럴 규모 이상의 대형 유전에 참여할 권리를 딴 것이다. 이에 더해 3개의 미개발 광구에 대한 개발권도 보장받았다. 한국석유공사가 확인한 세 광구의 석유 부존량은 최대 5억7000만 배럴이다. 유전이나 가스전 확보는 에너지 안보상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수입량 대비 한국이 보유한 유전 생산량의 비율인 자주개발률은 노무현 정부 말 4.7%에 불과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임기 중에 자주개발률을 20%까지 높이겠다는 약속을 했다.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말 이 비율은 10.8%까지 높아졌다. 이번 양해각서(MOU)로 이 비율은 다시 15%로 껑충 뛰게 됐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외부적 환경과 우리의 노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UAE 유전은 대부분 70년대에 석유메이저들에 개발권(조광권)이 넘어갔다. 30~40년 기한으로 체결된 이 조광권이 2014년부터 속속 만기가 돌아오는 것이다. UAE의 73개 유전 가운데 2014년 조광권이 만료되는 게 30개다. 이 중 10억 배럴 이상 대형 유전만 6개에 이른다. 마침 2009년 성사된 원자력발전소 수출 계약을 맺으면서 다져놓은 관계가 이 틈을 헤집고 들어가는 데 좋은 무기가 됐다. 원전 수출 계약이 타결된 이후 양국은 서로 고위급 경제사절단을 보내고, 산업협력에 속도를 내왔다. 특히 UAE가 관심을 보이는 조선·플랜트·반도체에서 한국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점이 큰 도움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단순히 유전 지분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100년간의 경제협력 동반자 관계를 향해 가는 새로운 여정의 출발”이라고 표현했다.

 더구나 UAE는 다른 나라에 비해 채굴 환경이 월등히 좋은 편이다. 최근 개발되는 유전은 대부분 심해나 밀림·극지 등 오지가 많다. 다른 곳의 유전은 이미 고갈됐거나 임자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UAE의 유전은 대부분 도시 근처의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미 석유를 뽑아 올리고 있기 때문에 탐사 비용도 필요 없고, 채굴한 원유를 실어 나를 도로나 파이프라인도 완벽히 갖춰져 있다. 품질도 우수하다. 그러니 생산비용은 다른 유전의 10%도 안 된다. 전 세계 유전의 평균 생산단가는 배럴당 18달러지만 중동 지역은 평균 6 달러, UAE는 1.5 달러에 불과하다. UAE가 유전 개발의 ‘프리미어 리그’라고 불리는 이유다. 덩치가 세계 77위에 불과한 석유공사가 프리미어 리그에 진입하는 셈이다. 대신 한국은 국내 석유비축기지 중 600만 배럴 분량의 공간을 공짜로 빌려주기로 했다. 현재 석유공사 비축기지 용량 1억4000만 배럴의 4.3%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이번에도 논란의 소지가 남았다. 양국 석유공사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는 “최소 10억 배럴 이상 대형 유전에 한국이 참여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명시됐다. 정부는 이를 “10억 배럴 이상의 물량 확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MOU 문구만 보면 UAE가 대형 유전의 지분을 약간만 넘겨줘도 약속 위반은 아니기 때문에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최현철·임미진 기자

◆자주개발률=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개발하는 석유·가스 생산량을 국내 소비량으로 나눈 값. 한 나라의 에너지 자립도를 측정하는 지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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