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다” … 왕치산·장핑 ‘반성 릴레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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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치산(左), 장핑(右)

중국 최고위 지도자들이 잇따라 정책 집행 과정에서의 오류를 시인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번 양회(兩會·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다. 왕치산(王岐山·왕기산) 부총리는 5일 열린 산둥(山東)성 인민대표단 회의에 참석해 “식품 안전 문제와 관련해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고 9일 홍콩 봉황(鳳凰) 위성TV가 보도했다. 왕 부총리는 대표들이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자 사실을 시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봉황TV는 “중국 고위 관리의 공개 사과는 흔치 않아 내용과 상관없이 사실만으로도 뉴스”라고 평했다. 권력 투쟁이 극심했던 중국의 정치 풍토에선 정책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정치적 자살행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왕 부총리는 이날 회의 석상에서 “면목이 없다. 막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났는데 식품 안전 이 도마에 올랐다. 정말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음식이 많지만 먹으려고 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며 “면발이 하야면 하얄수록, 쌀은 윤기가 흐를수록 미덥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장핑(張平·장평)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장관급)도 6일 기자회견에서 잘못된 정책 집행에 대해 사과했다. 장 주임은 지난해 허베이(河北)성 안핑(安平) 등 지역에서 예고 없이 전원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절감 정책을 강행한 것에 대해 “경험 부족으로 인해 그런 일이 발생했다”며 “집행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됐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장 주임은 이어 “우리의 초심은 그게 아니었다.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월 위정성(兪正聲·유정성·66) 상하이(上海)시 당서기는 지난해 11월 상하이 시내 한복판에서 발생해 58명의 희생자를 낸 대형화재 사건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개 사과해 주목받았다. 그는 시 당국의 관리·감독 책임을 인정한 뒤 “실사구시의 태도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중국 언론에선 정부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존중한다는 지도부의 의지를 반영한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청년보는 “정책 집행 과정에서 오류가 나타나면 정부는 책임감을 갖고 잘못을 시인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올 들어 중국 고위 관리들의 이 같은 릴레이 공개사과의 배경으로 북아프리카에서 불기 시작한 재스민혁명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개선을 약속하고 있다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홍콩의 정치 소식통은 “민생과 직결되는 식품 안전에 대한 인민의 불만이 중국판 재스민혁명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적으로 고위 관리들의 사과 도미노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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