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강남 좌파’ 와 뉴라이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뉴라이트라고 불린 자유주의연대(현 시대정신)가 2004년 출범했을 때 많은 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체가 뭔지 헷갈렸던 것이다. 당시 신지호 대표, 홍진표 사무총장 등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의 ‘전향 좌파’가 주도한 신우파(新右派) 운동인데, 좌·우 양쪽에서 비난을 들어야 했다. 좌파로부터는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었고, 우파로부터는 좌파의 첩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강남 좌파’에서 뉴라이트가 출범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좌·우 모두에서 들리는 비판도 그러하다. 강남 좌파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고학력 전문직 가운데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이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강남은 부를 상징한다. 강남 좌파는 일종의 ‘부자 좌파’이다.

 뉴라이트의 등장은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잇따라 패한 우파 진영의 침체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일시적 패배감이 아니라 향후 전망까지 불투명했기에 상황은 심각했다. 뉴라이트는 우파의 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2005년『한국의 보수를 논하다』를 펴내며 ‘한국 보수의 7가지 죄’를 도마에 올렸다. ①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죄 ②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살리지 못한 죄 ③지키기만 하고 가꾸지 못한 죄 ④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한 죄 ⑤특권 오·남용의 죄 ⑥ ‘자기 실현’에 탐닉하고 ‘자기 초월’을 못한 죄 ⑦베풀지 못한 죄 등이다. 박 교수는 ‘보수의 칠거지악(七去之惡)’을 없애기 위한 채찍질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꾸는 것이 보수라는 말도 했다. 우파가 실제 얼마나 채찍질했는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그런 반성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강남 좌파의 등장 배경이 비슷하다. 2007년 대선에서 패한 좌파의 향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2012년뿐 아니라 2017년이라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소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좌파는 하나의 등불이 되고자 한다.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기보다는 유럽식 복지국가를 선호하고, 또 북한의 억압성과 비효율성을 비판하는 점에서 과거의 좌파와 차이를 보인다. 일종의 뉴레프트(신좌파·新左派)라 할 수 있겠다.

 기왕 새 깃발을 든 마당에 자체 반성을 촉구하는 일부터 하는 것은 어떨까. ‘보수의 칠거지악’을 ‘진보의 칠거지악’으로 바꿔 읽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얼마나 다른가. 칠거지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만 아닐까. 오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이념이 아니라 인간이 중요한 것 같다. 바꿀 것은 바꾸되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진보라는 말도 할 수 있겠다.

 이념이 교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시대에 인간의 평가 잣대는 무엇인가. 강남 좌파의 전도사를 자임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능력과 매력을 강조한다. 매력은 박효종 교수도 이미 강조했다.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