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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만난 CEO]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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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김남구 부회장

김남구(48)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오너 경영자다. 부친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았다. 한국지주의 지분 20.2%(시가 약 5000억원)를 갖고 있다. 그가 지난 1일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동원증권(한투증권과 합병) 명동지점 대리로 회사에 들어온 지 꼭 20년 만이다. 오너이니 누구의 허락을 받을 일도 아니지만 그는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속도로 과장과 차장, 이사와 부사장 등을 거쳤다. 그래서인지 김 부회장은 겸손하고 기초가 잘 닦인 금융인으로 평가받는다.

 요즘 여의도 증권가와 금융당국 등에서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다. 한국에 아시아 굴지의 IB가 나온다면 한국지주가 선두에 설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가 많다. 긴 호흡의 오너 경영과 균형있게 짜인 사업 포트폴리오, 그리고 신뢰에 기반한 조직문화 등이 강점이다.

 한국지주 계열의 금융사들은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강해졌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국내 기업공개(IPO) 1위, 회사채 발행 2위를 차지했다. 한국지주 계열 자산운용사의 국내 주식형펀드 판매액은 펀드 환매의 와중에 오히려 늘었다. 2008년 말 9조1000억원에서 현재 9조7000억원으로 6000억원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미래에셋의 국내 주식형펀드는 34조원에서 16조원으로 18조원이나 줄었다.

김 부회장은 언론과 좀처럼 인터뷰하지 않는 경영자 다. 그래도 부회장 취임을 축하하러 찾아간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 요즘 한국지주 계열사들이 잘나갑니다.

 “2007~2008년 금융 버블 때 리스크 관리를 잘한 덕분입니다. 당시 중국을 필두로 이머징마켓이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회사에도 중국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내가 물었죠. ‘거기 가서 뭘 해서 돈을 벌지요?’라고요. 그런데 이렇다 할 답이 안 나왔어요. 남들이 가는데 늦으면 기회를 잃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주류였지요. 그러나 나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태평양에 아무리 고기가 많으면 뭐 하겠습니까. 잡아올릴 그물과 능력이 없으면 파도에 휩쓸려 짠물만 잔뜩 뒤집어쓰고 돌아오겠죠.”

 김 부회장은 그 뒤 중국 등 해외 어디서든 먹힐 영업 시스템과 노하우, 제품을 주문했다. 국내에서 충분히 훈련을 쌓고 무기를 만든 뒤 해외로 나가자는 얘기였다. 국내에서도 남들이 많이 판다고 무조건 따라 팔지 말자고 했다.

 김 부회장의 이런 경영 철학은 혹독한 경험을 통해 익힌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부친 회사의 명태잡이 원양어선에 자진해 몸을 실었다. 북태평양의 강추위 속에 5개월간 하루 16시간씩 노동을 하며 눈물과 짠물을 삼켰다. 그때 배운 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 증시 흐름은 어떻게 전망하는지요.

 “임직원들과 스토리 텔링 방식으로 올해 증시를 짚어봤어요. 결론은 보수적으로 대응하자는 쪽이었습니다. 다들 코스피지수 2600~2700을 전망하지만 우리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 회사의 공식 전망은 2250포인트입니다. 우리는 올해 미국 경제가 예상을 상회해 3.8%까지 성장할 것으로 봤습니다. 이에 따른 미국의 소비 증대는 석유 등 국제 에너지값을 밀어올릴 것이고,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줄어들 것입니다. 인플레 압력은 또한 한국의 경제성장을 억제할 것입니다. 올해 증시에 대한 큰 기대는 금물입니다. 리스크 관리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봅니다.”

- 정부에서 한국형 IB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는데.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정부는 아직 걱정이 너무 앞서는 것 같아요. 증권사들의 자기자본투자(PI)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게 대표적입니다. PI를 확대하지 않고는 글로벌 IB가 되기 힘듭니다. 국내 5대 증권사를 합해 봐야 자기자본 13조원, 시가총액 20조원입니다. 설사 자기자본 투자로 다 망한다 해도 국내 증시 볼륨(시가총액 1000조원)에 비하면 ‘새발의 피’입니다. 게다가 고객자산은 안전하게 따로 예치돼 있고요. 증권사는 은행과 분명 다릅니다. 리스크 관리는 개별 회사들이 알아서 하고도 남습니다.”

-4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은행을 인수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매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생각은 얼마 전 접었습니다. 은행은 정부 라이선스로 하는 장사고 공익성도 따라야 합니다. 돈을 벌긴 하겠지만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전후좌우 살펴야 할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IB 쪽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아시아 톱 5의 IB를 꼭 만들어낼 생각입니다.”

- 한국투자저축은행이 좋은 성과 내고 있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저축은행 중 유일하게 ‘A0’ 신용등급을 받은 초우량 회사로 7년 연속 흑자를 냈어요. 부동산 프로젝트 등에 한눈 팔지 않고 서민금융의 정도만 걸어온 결과입니다. 이번 저축은행 구조조정으로 서울에 좋은 매물이 나오면 추가로 사들일 계획입니다.”

김광기
경제선임기자

-랩어카운트 수수료를 놓고 업계가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봅니까.

 “랩어카운트는 펀드와는 다른 맞춤형 상품입니다. 게다가 수수료에 주식매매 비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고객은 수수료보다는 서비스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많이 팔기보단 정성껏 관리해 준다는 모토로 영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해 자문형 랩 판매를 일시 중단한 적도 있습니다. 예상대로 시장이 조정을 맞았고 다시 주식편입을 늘려주고 있습니다.”

김광기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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