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이순신대교는 일본 업체의 필수 견학 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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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특수교량을 온전히 시공할 수 있는 건설업체는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특히 현수교를 시공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일본·독일·영국·중국뿐입니다. 2012년 이순신대교가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현수교 시공기술 자립국이 됩니다.”

 국내에서 교량 전문가로 손꼽히는 대림산업 윤태섭(51·사진) 상무. 대림산업이 이순신대교를 순수 국내 기술로 시공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은 사람이다. 1982년 대림산업에 입사해 중부고속도로 미호천교 현장을 시작으로 서해대교·거금도연륙교 현장소장 등 지금까지 주요 바다 다리를 만드는 현장을 지켰다.

 “이순신대교와 같은 바다 위의 장대교량은 그 나라 토목기술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과거 현수교 공사 현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초 토목공사뿐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본 업체의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현수교는 주경간장을 얼마나 넓히느냐로 기술력을 가름한다. 그러자면 주요 공정인 메인 케이블 설치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직경 5㎜ 정도의 강선(鋼線) 1만2800개를 겹쳐 하나의 케이블을 만든다. 윤 상무는 “이 공정에 필요한 장비와 숙련된 기술을 갖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했다. 4년 전 이순신대교를 설계할 당시만 해도 케이블 설치 장비를 일본에서 빌려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윤 상무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케이블 설치 장비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석·박사급 인력을 대거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기초 토목공사와 주탑을 세우는 동안 윤 상무는 이들과 함께 케이블 설치 장비를 연구하고 제작했다. 그 결과 2년여 만인 지난해 케이블 설치 장비를 완성하고 이순신대교 밑에 소형 이순신대교를 만들어 케이블 설치 연습까지 마쳤다.

 100% 기술 자립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그는 “이제는 기업과 정부가 해외에 이런 기술을 많이 팔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순신대교 공사 현장은 일본 등 선진 건설업체들의 필수 견학 코스가 됐습니다. 순수 국내 기술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현수교를 놓는다는 것도 뿌듯하지만, 선진국의 건설업체들이 우리의 장비와 기술을 보고 놀라는 것을 볼 때는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황정일 기자

건설비 싼 사장교, 선박 통행 쉬운 현수교

교량 종류별 장단점

바다에 놓는 특수교량은 현수교(Suspension bridge)와 사장교(Cable stayed bridge)가 대표적이다. 현수교와 사장교는 교각 없이 주탑에 연결된 케이블로 상판을 받치는 방식이다. 사장교는 주탑과 상판을 케이블로 직접 연결하고, 현수교는 메인 케이블에 서브 케이블을 달아 상판을 연결하는 게 차이다. <그림 참조>



 케이블 연결 방식이 다른 만큼 다리의 특성도 달라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장교는 주탑과 주탑 사이 거리인 주경간장의 한계가 1000m 정도다. 현재 기술로는 많이 늘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 현수교는 주경간장을 이보다 더 늘릴 수 있다. 이순신대교만 해도 쑤퉁대교보다 주경간장이 457m 더 넓다. 메인 케이블에 달린 서브 케이블을 통해 상판을 받치므로 힘이 분산돼 더 넓게 벌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바다에 놓는 특수교량으로는 사장교보다는 현수교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선박이 점점 대형화하고 있는 점도 작용한다. 수심·파도 등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초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지나다니려면 주경간장이 1300m 이상은 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길이에 따라 경제성은 다르다. 주경간장이 1000m 이하일 경우 사장교 건설비가 현수교보다 20~30% 싸게 먹힌다. 그 때문에 사장교는 최근 들어 내륙 도로 공사에 많이 적용된다.

 현수교와 사장교는 상판(자동차나 사람이 다니는 길)이 공중에 떠 있는 형태여서 바람에 약한 편이다. 그렇다고 안전에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다. 강한 바람에 상판이 다소 흔들리는 정도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순신대교의 경우 상판(왕복 4차로) 한가운데 바람길을 낸다.

 반면 지진에 대한 안전성은 뛰어난 편이다. 현수교 가운데 주경간장이 가장 긴 일본의 아카시대교는 건설 중에 닥친 한신(阪神)대지진(1995년 1월 17일)으로 지반이 내려앉는 바람에 주경간장이 1m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명지대 토목환경공학과 박영석 교수는 “설계 단계부터 철저하게 안전을 고려하므로 중소형의 일반 교량보다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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